지역유산

양천수리조합 사무실과 펌프장

운영자

2026-05-17

양천수리조합 사무실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양천수리조합 사무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가 2008년 시행한 (구)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 기록화사업 도면집 광역배치표를 보면 사무실 건물과 배수펌프장 건물을 따로 기록하고 있다. 사진 속 양천수리조합 사무실은 기록화사업 당시 한국농촌공사 서울사무소로 운영되었고, 배수펌프장은 양천배수펌프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 

 

첨부한 사진은 강서구청 홍보소통과에서 2026년 5월 14일 강서구청 사이트 내 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에 업로드한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이다. 건물을 자세하게 담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 구청 내에 기록을 남겨둔 분이 있었다는 것에 반갑다. 배수펌프장과 함께 1920년대 중반 즈음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

 

도면_등록문화재_서울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_도면집 광역배치표
출처 - 국가유산청 ​

 

서울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 (서울 舊 陽川水利組合 配水펌프場) 기록화사업 | 국가유산포털

 

 

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를 보면 친구 답사가분이 2005년 즈음에 찍어놓은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양천수리조합 사무실이 있던 자리는 현재 대방디엠시티 오피스텔이 되었고, 배수펌프장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되었다.

 

 

서울의 마지막 신도시, 마곡의 개발 비화 [신과함께 스페셜 - 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 #14]

 

 

양천수리조합 사무실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2007년 양천향교인근 모습
사진출처 - 강서구청(공공저작물 개방(강서아카이브) 옛사진관)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서울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농업 개발과 한강 하류 수리 체계의 구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근대 산업유산이다. 1923년 설립된 양천수리조합이 1925년 대홍수를 겪은 뒤 본격적인 치수 사업을 추진하면서 건립한 시설로, 1926년 착공되어 1928년 완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당시 김포평야와 양천 일대는 한강 하류 저지대에 위치해 홍수 피해가 반복되던 지역이었다. 특히 장마철에는 한강 수위 상승으로 농경지가 쉽게 침수되었고, 반대로 겨울과 봄철에는 농업용수가 부족해 안정적인 벼농사가 어려웠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양천수리조합은 배수와 관개를 동시에 수행하는 근대식 수리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 

 

배수펌프장은 콘크리트 옹벽 위에 목조 건축물을 올린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높이 약 4미터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체는 홍수 시 내부 설비가 침수되는 것을 막기 위한 기반 시설이었다. 그 위에는 일본식 목조 구조 건물이 세워졌는데, 이는 당시 근대 산업시설과 일본식 건축 양식이 결합된 형태를 잘 보여준다. ​ 

 

건물 내부에는 대형 펌프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홍수 때는 내부의 물을 강 밖으로 퍼내고, 평상시에는 주변 논으로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는 펌프 설비가 사라졌지만, 펌프가 설치되었던 흔적과 지하 배수관 구조가 남아 있어 당시 시설의 작동 원리를 확인할 수 있다. ​ 

 

양천수리조합은 1920년대 일본 제국의 산미증식계획과 밀접하게 연결된 조직이었다. 산미증식계획은 조선의 쌀 생산량을 늘려 일본 본토로 공급하기 위해 추진된 식민지 농업 정책으로, 이를 위해 전국 각지에 수리조합이 조직되었다. 양천수리조합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졌으며,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과 양서면 일대, 현재의 마곡동·가양동·등촌동·염창동·내발산동 등 약 595정보 규모의 농경지를 관리했다. 이는 단순한 지역 농업시설이 아니라, 식민지 수탈 구조와 근대 농업 인프라가 결합된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 

 

이 건물은 오늘날 서울에서 거의 사라진 농업 경관의 흔적이기도 하다. 현재의 마곡지구는 첨단 산업단지와 대규모 도시개발 지역으로 변모했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 이 일대는 서울 서부의 대표적인 농경지였다. 배수펌프장은 이러한 마곡의 과거를 증언하는 거의 유일한 실물 산업유산으로 평가된다. 특히 일제강점기 농업 관련 배수펌프장 가운데 원형이 남아 있는 사례가 드물고, 대형 목조 시스템과 콘크리트 구조가 결합된 형태 역시 희소성이 높아 건축사적 가치 또한 크다. ​ 

 

이러한 역사성과 희소성을 인정받아 2007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서울식물원 조성과 함께 복원·정비되어 현재는 ‘마곡문화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거 농업 기반 시설이었던 공간은 오늘날 시민들이 지역의 역사와 기억을 체험하는 문화 공간으로 다시 활용되고 있으며, 이는 서울 서부 지역의 산업·농업·도시개발 역사를 연결해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