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 강서구청 URL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능마루(능말)는 김포공항 개발 이전까지 존재했던 강서 지역 자연마을의 흔적을 보여주는 생활유산 공간이다. 현재는 대부분 도시화되었지만, 능마루라는 이름은 과거 이 지역에 형성되어 있던 마을 공동체와 생활환경의 기억을 오늘날까지 이어주고 있다. 특히 방화동 일대는 한강과 개화산, 김포평야가 연결되던 지형 위에 농경 중심의 자연마을들이 형성되었던 지역으로, 능말 역시 그러한 전통적 생활권 속에서 형성된 마을 가운데 하나였다.
능마루라는 이름에는 조선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지형적 특징이 함께 담겨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와 지역 자료에 따르면, 조선 시대 선조의 아들이자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의 능을 이 일대에 조성하려 했던 적이 있었으며, 비록 실제 능이 들어서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을 이름이 ‘능말’ 또는 ‘능리(陵里)’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능말이라는 지명은 단순한 자연마을 이름을 넘어 왕실과 관련된 기억을 간직한 장소로 전해진다. 동시에 ‘능’이라는 말은 순우리말로 언덕이나 둔덕을 의미하기도 해, 지형적으로 높은 언덕 마루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에서 ‘능마루’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즉 능마루라는 지명은 역사적 사건과 지역의 지형적 특징이 함께 결합된 이름이라 볼 수 있다.
과거 방화동 일대는 오늘날과 같은 도시 구조가 아니라 논과 밭, 하천과 수로, 낮은 구릉과 자연마을이 이어진 전형적인 농촌 생활권이었다. 주민들은 농업과 한강 수운, 주변 장시와 연결된 생활을 이어갔으며, 마을 단위 공동체 문화 역시 강하게 유지되었다. 그러나 1930~40년대 김포비행장 건설과 이후 김포공항 확장, 군사시설 조성, 도시개발이 이어지면서 방화동 일대 자연마을 구조는 급격하게 변화하게 된다. 특히 공항 배후 지역으로 편입되며 오래된 마을 상당수가 축소·이전·해체되었고, 능마루 역시 점차 원래의 형태를 잃어가게 되었다.
현재 방화동 일대에 남아 있는 보호수들은 이러한 옛 능마루 마을의 기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흔적이다. 수령 400~500년 이상으로 알려진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는 오랜 시간 마을의 중심 공간을 지켜온 나무들로 전해지며, 과거 주민들의 생활과 공동체 문화가 형성되었던 장소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보호수와 옛터비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과거 이곳에 사람들이 살아가던 시간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생활사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애향 능말 옛터비’ 역시 이러한 사라진 마을의 기억을 현재에 남기기 위해 세워진 생활유산적 공간이다. 이 비석은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과거 이곳에 실제 주민들의 삶과 공동체가 존재했음을 드러내는 장소 기억의 표식이다. 특히 ‘애향’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지리 정보가 아니라, 고향과 공동체에 대한 기억과 정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생활유산은 반드시 오래된 건축물이나 지정문화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민들의 생활 방식과 공동체 경험, 지역의 일상문화와 장소 기억을 현재까지 이어주는 것 역시 중요한 생활유산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방화동 능마루는 강서 지역 자연마을 문화와 주민 공동체의 흔적을 보여주는 생활유산이며, 공항 개발과 도시화 속에서 사라져간 지역의 생활사를 현재 도시 안에서 다시 기억하게 만드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