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유산

강서 평화의 소녀상, 고(故) 황금자 할머니 상

운영자

2026-04-22

강서 평화의 소녀상, 고(故) 황금자 할머니 상
사진 - 김경현


강서 평화의 소녀상과 고(故) 황금자 할머니 상은 서울 강서구 마곡 일대에 세워진 추모 조형물이지만, 그 의미는 단순한 기념 조형물의 범위를 넘는다. 이 두 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역사, 지역사회가 기억을 조직하는 방식, 그리고 강서구가 스스로의 근현대사를 공공 공간 안에 새겨 넣는 과정을 함께 보여주는 사례다. 2019년 11월 강서구 양천로 311 일대 옛 마곡 빗물펌프장 부지의 유수지 공원에 강서 평화의 소녀상이 제막되었고, 그 옆에 황금자 할머니 상이 함께 설치되었다. 이 공간은 이후 마곡 유수지 생태공원, 평화공원, 최근에는 마곡 어울림공원으로도 불리고 있다.

 

강서 평화의 소녀상은 특정 한 사람만을 위한 조형물이 아니라, 강서구에 거주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역 차원에서 기억하기 위해 세워졌다. 제막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 소녀상은 고 황금자 할머니를 포함해 강서구와 인연을 가진 피해자 12명을 기억하는 뜻을 담고 있으며,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약 2년 10개월 동안 모금과 준비를 거쳐 건립했다. 약 6,500만 원의 시민 성금이 모였고, 강서구는 이를 공공조형물로 지정해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즉, 이 소녀상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세운 기념물이 아니라, 지역 시민사회가 먼저 기억의 필요를 제기하고 행정이 이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 조형물의 중심에 함께 놓인 황금자 할머니 상은 강서구에서 특히 상징성이 크다. 황금자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이면서 동시에, 강서구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이자 기부와 나눔을 실천한 인물로 기억된다. 강서구장학회 자료에 따르면 그는 생전에 폐지 판매 수입과 생활지원금 등을 아껴 2006년, 2008년, 2010년에 걸쳐 총 1억 원을 장학금으로 기탁했고, 사후에도 유언에 따라 6,742만6530원의 유산이 장학기금으로 전달되었다. 이 공로로 2007년 강서구민상 대상, 2011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으며, 2014년 별세 후 강서구 첫 구민장으로 영결식이 치러졌다. 따라서 황금자 할머니 상은 단순히 피해자의 고통을 재현하는 동상이 아니라, 피해의 역사와 더불어 지역사회 안에서 실천된 기부와 윤리의 기억까지 함께 담아내는 성격을 가진다.

 

이 두 조형물이 나란히 놓여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평화의 소녀상이 집단적 역사 기억의 상징이라면, 황금자 할머니 상은 그 역사 속 한 인물이 지역사회와 맺은 구체적 관계를 드러낸다. 다시 말해 하나는 보편적 기억의 형상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적 기억의 인격화다. 이 조합을 통해 강서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추상적 역사로만 다루지 않고, 자기 지역에서 실제로 살았던 인물의 삶과 연결해 공공 기억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중앙의 역사 서사를 지역의 장소성과 결합시키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공간의 배치 또한 상징적이다. 이 조형물들이 세워진 마곡 유수지 일대는 과거 빗물펌프장 부지였고, 현재는 공원화된 도시 공간이다. 즉 원래는 기능적 기반시설이었던 장소가 추모와 기억의 장소로 전환된 것이다. 강서구는 이후 이 일대를 단순한 휴식 공간으로만 두지 않고, 광복절·3·1절과 같은 시기에 헌화와 전시, 추모 행사를 여는 공공 기억 공간으로 활용해 왔다. 2024년에는 구청 로비에서 황금자 할머니 10주기 추모 전시가 열렸고, 2025년에는 구청장이 직접 평화의 소녀상에 헌화했다는 보도도 확인된다. 이는 이 공간이 일회성 설치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기념 행위가 반복되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강서 평화의 소녀상과 고 황금자 할머니 상은 하나의 조형물 집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의 기억이 중첩된 공공 역사 공간이다. 여기에는 식민지 폭력의 역사, 피해 생존자의 개인사, 지역사회의 시민 모금 운동, 지방정부의 공공 기념 정책, 그리고 현재 진행형의 추모 실천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이 공간의 가치는 단순히 “소녀상이 있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오히려 강서구가 스스로의 지역사 안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기억하고, 누구를 통해 그 기억을 구체화하며, 어떤 방식으로 공공 공간에 고정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강서 평화의 소녀상, 고(故) 황금자 할머니 상
사진 - 김경현

 

강서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함께 해 주신 분들
사진 - 김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