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정웅(神部正雄)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부천군 소사면에 거주했던 일본인 지주로, 1930년대 후반 식민지 농업 구조 속에서 형성된 대지주 계층의 한 사례로 확인된다. 그는 경기도농회가 도내 전답 30정보 이상 소유자를 대상으로 작성한 지주 명부에 포함된 인물로,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를 기반으로 지역 농업 생산과 소작 관계를 조직·통제하던 상위 계층에 속했다.
1937년 6월 기준 그의 토지 소유 현황은 논 7정보, 밭 51정보로 나타나는데, 이는 일반적인 논 중심 농업 구조와 비교했을 때 밭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구성은 소사면 일대의 토지 이용 특성과도 일정 부분 연관될 가능성이 있으나, 구체적 토지 이용 방식이나 작물 구성까지는 확인되지 않아 이 부분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총 58정보에 이르는 토지 규모 자체는 당시 개인 단위 지주로서는 상당한 수준이며, 특히 100명의 소작인을 고용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경제적 영향력은 단순한 토지 소유를 넘어 지역 농업 생산 구조 전반에 미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규모는 단순한 자작 경영이 아닌, 전형적인 소작제 기반의 지주 경영 형태를 의미한다. 소작인 100명이라는 수치는 개별 농가 단위를 넘어 하나의 ‘농업 조직’을 형성하는 수준으로, 신부정웅은 사실상 다수 농가의 생산 활동을 간접적으로 지휘·관리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 구조에서 조선인 농민들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채 경작을 담당하고 일정 비율의 소출을 지대로 납부하는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지주는 이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했다.
신부정웅의 사례는 몇 가지 구조적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일본인 지주는 인구 비중과 무관하게 대규모 토지를 집중적으로 소유하며 지역 농업의 상층을 점유했다. 둘째, 소작인을 대규모로 고용함으로써 생산과 분배 구조를 동시에 장악하는 경제적 권력을 형성했다. 셋째, 이러한 지주층은 행정 권력과 직접 동일시되지는 않지만, 식민지 농업 체제를 실질적으로 유지·재생산하는 기반으로 작동했다.
결과적으로 신부정웅은 단일 인물의 기록을 넘어, 1930년대 부천 지역—오늘날 부천과 서울 서남부 일대를 포함하는 공간—에서 작동하던 식민지 토지 지배 구조를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다. 그의 토지 구성과 소작인 규모는 당시 농촌 사회가 지주와 소작인으로 분절된 상태에서 운영되었음을 드러내며, 일본인 대지주 중심의 토지 집중과 조선인 농민의 종속적 생산 구조라는 식민지 농업 체제의 핵심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참고문헌: 『농지개혁시 피분배지주 및 일제하 대지주 명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5.12,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재력가』, 경기문화재단,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