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희(崔炳熙)는 일제강점기 부천군 소사면을 기반으로 활동한 경제인이자 대지주로, 토지 소유와 금융·중개 업무가 결합된 식민지기 지역 자산가의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1938년 주소는 소사면 율곡리 586번지로 확인되며, 동시에 소사면 심곡리 609번지에 본점을 둔 주식회사 소사계리의 이사로 활동했다. 소사계리는 1936년 4월 15일 설립된 회사로, 가축과 비료 자금 융통, 축산물 매매 및 위탁, 부동산 매매와 중개 등 금융·신탁 성격의 업무를 목적으로 삼았고, 최병희는 발행주식 1,000주 가운데 150주를 보유한 주요 주주였다. 이는 그가 단순히 농지를 보유한 지주에 머문 것이 아니라, 토지 기반을 바탕으로 지역 금융과 유통, 부동산 거래까지 사업 영역을 넓힌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그의 경제적 규모도 상당했다. 경기도농회가 30정보 이상 소유 지주를 대상으로 작성한 명부에 따르면, 1937년 6월 말 기준 최병희는 수원군에 논 24정보와 밭 1정보, 부천군에 논 26정보와 밭 23정보를 소유해 두 지역을 합쳐 총 64정보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고용한 소작인은 수원군 60명, 부천군 96명으로 총 156명이었다. 이 수치는 최병희가 단일 생활권에 국한된 향촌 지주가 아니라, 부천과 수원에 걸쳐 복수 지역의 농업 생산과 소작 관계를 운영한 광역형 지주였음을 의미한다. 특히 부천군에서만도 49정보의 토지를 보유하고 96명의 소작인을 거느렸다는 점에서, 그는 소사면 일대 농업 구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상층 지주층으로 볼 수 있다.
최병희의 성격을 더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은 소사계리 참여다. 소사계리는 단순한 농업 회사가 아니라, 가축·비료 자금 융통과 축산물 거래, 부동산 매매·중개를 함께 다룬 회사였다. 이는 당시 지역 유지들이 토지 소유만으로 수익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금 대부와 거래 중개, 부동산 운영 같은 준금융 활동을 통해 지역 경제 전반에 개입했음을 보여준다. 최병희가 그 이사이자 주요 주주였다는 사실은, 그의 경제 활동이 전통적 지주제와 근대적 회사 운영이 결합된 형태였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그는 단순한 “땅부자”라기보다, 토지·자금·유통을 함께 다루는 식민지기 지역 경제 엘리트에 가까웠다.
또한 1930년대 후반 부천 지역 사회에서 최병희의 존재는 학교 증축 기성회나 지역 유지 네트워크와도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확인 가능한 공개 자료만으로 그의 면협의회원 경력이나 금융조합 임원 여부, 해방 이후 행적까지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 단계에서 분명한 것은, 최병희가 부천 소사면을 거점으로 회사 경영과 대지주 경영을 병행한 인물이었고, 그 활동 범위가 부천군 내부를 넘어 수원군까지 뻗어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최병희는 일제강점기 부천 지역에서 토지 소유, 소작 경영, 회사 운영, 부동산·금융성 업무가 한 사람에게 결합된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이력은 식민지기 지역 지배층이 단순히 농업 생산을 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금과 거래, 부동산 시장까지 포괄하는 방식으로 세력을 확장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따라서 최병희는 부천 지역의 대지주일 뿐 아니라, 식민지기 지역 경제 구조의 다층성을 드러내는 인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참고문헌: 『농지개혁시 피분배지주 및 일제하 대지주 명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5.12, 『朝鮮銀行會社組合要錄』, 1937년판, 『朝鮮銀行會社組合要錄』, 1939년판,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재력가』, 경기문화재단,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