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분(鄭丁分)은 일제강점기 부천군 소사면 개봉리를 기반으로 활동한 지주로, 1930년대 후반 부천 지역 농업 구조 안에서 일정한 규모 이상의 토지를 보유한 인물이었다. 경기문화재단이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그는 1938년 주소가 소사면 개봉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경기도농회가 도내 전답 30정보 이상 소유 지주를 대상으로 작성한 명부에 수록되어 있다. 1937년 6월 말 기준 정정분의 토지 규모는 논 4정보, 밭 35정보로 총 39정보였고, 고용한 소작인 수는 70명이었다.
이 기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토지 구성이 논보다 밭에 크게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 다른 지주들이 논 중심의 소유 구조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정정분은 밭농사 중심의 토지 경영을 했던 지주로 볼 수 있다. 총 39정보에 소작인 70명을 두었다는 점은 단순한 자작농이나 소규모 토지 소유자가 아니라, 다수의 소작인을 매개로 생산을 운영하는 지주층에 속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정정분이 경기도농회의 대지주 조사 명부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단순히 지역 내부에서만 알려진 토지 소유자가 아니라 식민지 농정 차원에서 파악된 경제 주체였음을 뜻한다. 이 명부는 대규모 토지 소유자를 행정적으로 관리하고 농업 생산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자료였기 때문에, 정정분 역시 식민지기 부천 농촌 사회의 상층 토지 소유 계층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현재 확인되는 공개 자료는 주소, 토지 규모, 소작인 수에 집중되어 있다. 면협의회원, 금융조합 임원, 학무위원 같은 공적 직책을 맡았는지, 또는 해방 이후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는 이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범위는, 정정분이 소사면 개봉리를 기반으로 총 39정보의 토지를 소유하고 70명의 소작인을 둔 부천 지역의 지주였다는 점까지다.
결국 정정분의 사례는 일제강점기 부천 지역에서 토지 집중과 소작 관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다. 특히 밭 비중이 높은 토지 구성은 부천군 내부에서도 토지 이용 방식이 일률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식민지기 농업 구조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참고문헌: 『농지개혁시 피분배지주 및 일제하 대지주 명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5.12,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재력가』, 경기문화재단,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