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재(朴容載)는 일제강점기 부천군 부내면 하리를 기반으로 활동한 대지주이자 지방 행정·금융 부문에 관여한 지역 유력자였다. 그의 일본식 이름은 부목용재(富木容載)로 확인되며, 1927년 주소는 부천군 부내면 하리 400번지였다. 1930년대에는 부내면장을 지냈고, 1939년에는 부평금융조합 감사역에 재선되었으며, 1916년 9월에는 자가용 주조 면허를 받은 사실도 확인된다. 이는 박용재가 단순히 농지만 소유한 인물이 아니라, 지방 행정과 금융, 그리고 소규모 제조업까지 아우른 복합적 지역 엘리트였음을 보여준다.
그의 경제적 기반은 매우 컸다. 1938년 경기도농회가 작성한 30정보 이상 지주 명부에 수록되었고, 1937년 6월 말 기준 부천군에 논 84정보와 밭 37정보, 총 121정보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고용한 소작인 수는 323명에 달했다. 이 정도 규모는 단순한 부농이 아니라, 부천 지역 농업 생산과 소작 관계를 광범하게 지배하던 상층 대지주였음을 뜻한다. 특히 300명이 넘는 소작인을 거느렸다는 점은 그의 토지 경영이 개별 농가 수준이 아니라 다수의 농민을 포괄하는 대규모 소작 운영 체계였음을 보여준다.
박용재의 의미는 토지 규모에만 있지 않다. 부내면장 경력은 그가 식민지기 말단 지방행정의 핵심 위치에 있었음을 뜻하고, 부평금융조합 감사역 재선은 농촌 금융과 자금 흐름에도 관여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자가용 주조 면허까지 더해 보면, 그는 토지 소유를 중심으로 행정 권한, 금융 네트워크, 영업 활동을 함께 가진 인물이었다. 다시 말해 박용재는 식민지기 부천에서 경제력과 지방 통치 구조가 한 사람에게 결합된 전형적인 사례에 가깝다. 다만 현재 확인 가능한 공개 자료만으로는 그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졌는지, 또는 친일 행적이 어느 정도였는지까지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결국 박용재는 부천군 부내면 하리를 거점으로 대규모 농지를 소유하고, 면장과 금융조합 감사역을 맡으며, 주조업 면허까지 보유한 지역 유력자였다. 그의 이력은 일제강점기 부천 지역에서 토지 소유, 행정 참여, 금융 관여가 어떻게 결합되어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이며, 당시 농촌 사회의 권력이 단순한 토지 재산을 넘어 제도적 지위와 경제 활동 전체로 확장되어 있었음을 드러낸다.
참고문헌: 『농지개혁시 피분배지주 및 일제하 대지주 명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5.1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조선총독부관보』, 1927.10.21., 1939.6.26., 1940.8.14.,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재력가』, 경기문화재단,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