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석(芮宗錫, 1872~1955)은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강점기 전 시기에 걸쳐 관료·실업가·친일단체 간부·지방 공공조합 책임자를 두루 맡으며 식민지 권력 구조 안에서 활동한 대표적 인물이다. 1872년 5월 14일 경기도 연천군 삭녕면에서 태어나 1955년 5월 12일 사망했으며, 호는 운계(雲溪), 본관은 의흥이다. 1894년 전우학교를 졸업한 뒤 전우국 주사로 관직에 들어가 중추원 의관, 관내부 전선사감 등을 지내며 대한제국기 관료 경력을 쌓았다. 이 시기부터 그는 단순 행정 관료가 아니라 이후 식민지 권력과 결합할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그의 행보에서 결정적인 전환은 1900년대 중반 이후다. 1906년 동양용달회사를 설립하며 실업계에 진출했고, 이후 경성의 자본 네트워크 안으로 빠르게 편입되었다. 특히 자작 조중응과의 밀착 관계는 그의 정치적·경제적 위치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였다. 경기도 관련 자료에서는 그가 조중응의 최측근으로 활동하며 ‘소조중응’이라 불렸다는 점이 강조되는데, 이는 단순한 후원 관계가 아니라 권력 네트워크 내부의 실질적 협력자였음을 의미한다. 이 시기부터 예종석은 관료·자본·정치가 결합된 식민지 엘리트 경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그의 활동은 더욱 확장된다. 그는 조선지주식회사 이사 및 사장을 비롯해 북선흥업주식회사, 약업주식회사, 조선권업신탁주식회사, 영흥탄광주식회사 등 다수 기업의 이사·감사로 참여하며 식민지 경제 구조 안에서 자본 축적과 기업 운영에 깊이 관여했다. 1920년에는 『조선일보』 창간 발기인으로 참여해 발행인 겸 부사장을 맡았고, 경성상공회의소 의원, 경성부 협의회원 및 부회의원 등을 역임하며 경제계와 도시 행정 영역을 동시에 장악했다. 이 경력은 그가 단순한 기업인을 넘어 식민지 도시 운영 구조에 직접 참여한 인물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종석의 역사적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은 경제 활동이 아니라 친일 협력의 밀도와 지속성에 있다. 그는 한일병합 이전부터 이미 친일 정치 활동에 깊이 관여했다. 1907년 국시유세단 발기인과 규칙제정위원, 1910년 사무간사로 활동했으며, 한성부민회 창립위원으로 일본 관광단을 영접하고 병합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활동에 참여했다. 이토 히로부미 사망 이후에는 국민대추도회 설행위원으로 참여했고, 경성신사 관련 조직에서도 활동하는 등 일본 제국의 상징 권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1910년대 이후에는 이러한 활동이 조직적으로 확대된다. 그는 대정실업친목회에서 발기인, 간사, 이사, 회장 등을 역임하며 장기간 핵심 간부로 활동했다. 이 단체는 조선총독부가 사실상 인정한 대표적 친일 경제단체였으며, 조중응·이완용·송병준 등 식민지 권력 핵심 인물들이 참여한 조직이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그는 자치단 조직에 참여하고 시위 반대 연설을 진행하는 등 독립운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식민지 질서 유지에 협력했다. 이후에도 각파유지연맹, 갑자구락부, 동민회, 조선대아세아협회, 경성군사후원연맹, 조선지원병제도제정축하회 등 다양한 친일 및 전시 협력 단체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김포와의 연결 역시 그의 활동 범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그는 1931년부터 1939년까지 김포수리조합 조합장을 지냈다. 수리조합은 농업용수 관리와 농업 기반 시설을 담당하는 핵심 조직으로, 식민지 농업 생산 체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직책은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라 지역 농업 구조와 토지 이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리였다. 따라서 예종석은 경성 중심의 자본·정치 네트워크에 속한 인물이면서도, 김포 지역에서는 식민지 농업 기반을 통제하는 역할까지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일제에 의해 공식적으로도 인정되었다. 1935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었으며, 이는 식민지 통치에 협력한 공로를 제국이 직접 평가한 결과였다. 광복 이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었을 때 그는 생존해 있었고 반민특위의 조사를 받았으나, 특위 활동이 무력화되면서 처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발표 명단과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모두 수록되면서 그의 친일 행적은 공식적으로 재확인되었다.
결국 예종석은 대한제국기의 관료에서 출발해 식민지기 자본가와 행정 엘리트로 이동하고, 다시 친일단체와 전시 동원 체제의 핵심 간부로 확장된 인물이다. 그의 경력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선 위에 있으며, 그 중심에는 권력과 자본, 그리고 식민지 협력이 결합된 구조가 있다. 특히 김포수리조합장 경력은 그의 활동이 단지 경성 상층부에 머물지 않고 지역 농업 기반까지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예종석은 단순한 실업가나 지역 유지가 아니라, 대한제국 말기에서 일제 말기까지 이어지는 권력 구조의 변화를 한 인물 안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참고문헌: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편, 『친일인명사전』, 2009, 『직원록』,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朝鮮銀行會社組合要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재력가』, 경기문화재단,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