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연구

장곡천수희 (長谷川修喜, 하세가와 슈우키)

운영자

2026-04-21

장곡천수희(長谷川修喜)는 일제강점기 김포군 양동면 목동리에 거주한 일본인 지주로, 식민지기 김포 지역에 형성된 일본인 토지 소유의 한 사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1938년 주소는 양동면 목동리 384번지로 확인되며, 경기도농회가 도내 전답 30정보 이상 소유 지주를 대상으로 작성한 지주명부에 수록되어 있다. 다만 실제 소유 토지는 김포군이 아니라 장단군에 있었는데, 1937년 6월 말 기준 논 10정보, 밭 31정보로 총 41정보를 보유했고, 고용한 소작인은 89명이었다. 즉 그는 김포에 거주했지만, 경제적 기반은 장단군의 농지 소유와 소작 경영에 두고 있던 외지 지주였다.

 

이 점이 장곡천수희의 핵심적 특징이다. 일반적인 지역 지주가 거주지와 경작지, 소작 관계를 같은 생활권 안에서 형성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장곡천수희는 김포에 거주하면서도 장단군의 토지를 소유한 일본인 지주였다. 이는 식민지기 일본인 지주층이 특정 지역의 토지에만 묶여 있지 않고, 거주와 소유를 분리한 채 여러 지역에 걸쳐 토지를 경영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그의 사례는 김포 지역사 내부의 인물인 동시에, 식민지기 일본인 자산가가 조선의 농지를 광역적으로 소유·운영한 구조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을 수 있다.

 

토지 구성에서도 특징이 드러난다. 그는 논보다 밭 비중이 더 컸고, 총 41정보에 89명의 소작인을 두고 있었다. 이 수치는 단순한 중간 규모의 자산가가 아니라, 다수의 소작인을 통해 수익을 확보하는 본격적인 대지주 경영을 했음을 뜻한다. 특히 밭이 31정보로 더 많다는 점은 벼농사 중심의 수전 지주와는 다른 자산 구성을 보여주며, 장단군 일대의 토지 이용 조건과도 관련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현재 확인되는 자료만으로는 그가 어떤 작물을 중심으로 경영했는지, 또는 장단군 내에서 어느 정도의 지역 영향력을 행사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장곡천수희는 김포에 거주한 일본인 지주였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단순한 ‘김포 거주자’보다 식민지기 일본인 외지 지주라는 점에 있다. 그는 김포군 양동면에 거주하면서 장단군의 농지를 대규모로 보유하고 소작인을 고용해 운영한 인물이었고, 이 기록은 식민지기 조선 농촌에서 일본인 지주가 어떻게 지역을 가로질러 토지를 소유하고 수익을 확보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다. 따라서 장곡천수희는 김포 지역 일본인 거주층의 일부이면서도, 동시에 식민지 토지 지배 구조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인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참고문헌: 『농지개혁시 피분배지주 및 일제하 대지주 명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5.12,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재력가』, 경기문화재단,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