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련(玄晸連)은 일제강점기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를 기반으로 활동한 대지주로, 당시 김포 지역에서도 특히 규모가 큰 토지 소유자에 속했던 인물이다. 1938년 주소는 고촌면 신곡리로 확인되며, 번지는 전하지 않는다. 그는 경기도농회가 도내 전답 30정보 이상 소유 지주를 대상으로 작성한 지주명부에 수록되었는데, 1937년 6월 말 기준 김포군 내에 논 79정보를 소유하고 있었고, 고용한 소작인은 165명에 달했다. 이 수치는 김포 지역 지주들 가운데서도 매우 큰 규모에 해당하며, 현정련이 단순한 부농이나 중간 지주가 아니라 지역 농업 생산과 소작 관계를 광범하게 지배한 상층 대지주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현정련의 경우 밭 없이 논 79정보만 보유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그의 토지 소유가 수전 농업, 곧 쌀 생산 중심의 고수익 농업 기반에 집중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김포는 한강 하류와 평야 지대를 끼고 있어 벼농사 생산력이 높은 지역이었는데, 현정련은 이런 지역적 조건 속에서 대규모 논을 집중적으로 소유한 지주였던 셈이다. 더구나 소작인 수가 165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그의 토지 경영이 단순한 가족 단위 경작이 아니라 다수의 농가를 포괄하는 대규모 소작 경영 체계였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다시 말해 현정련은 토지 소유 규모뿐 아니라 그 운영 방식에서도 식민지기 농촌 사회의 전형적인 상층 지주 구조를 보여주는 사례다.
다만 현재 확인되는 자료는 주소, 토지 규모, 소작인 수에 집중되어 있어, 그가 면협의회원이나 금융조합 임원, 학무위원 같은 공적 직책을 맡았는지, 혹은 지역 사회에서 어떤 행정적 역할을 수행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범위는, 현정련이 고촌면 신곡리를 기반으로 한 김포 지역의 거대 지주였고, 식민지기 김포 농업 구조에서 매우 강한 경제적 우위를 점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현정련은 일제강점기 김포 지역에서 토지 집중이 얼마나 심화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논 79정보와 소작인 165명이라는 기록은, 당시 농촌 사회가 소수 대지주의 토지 소유와 다수 소작농의 노동에 의해 유지되었음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현정련은 개별 인물이라기보다, 식민지기 김포 농업 구조의 불균등성과 대지주 지배의 실상을 보여주는 핵심 사례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참고문헌: 『농지개혁시 피분배지주 및 일제하 대지주 명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5.12,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재력가』, 경기문화재단,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