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록(李載祿)은 일제강점기 김포군 읍내면 풍순리를 기반으로 활동한 대지주로, 1930년대 후반 김포 지역 농업 구조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인물이었다. 확인되는 자료에 따르면 1938년 주소는 읍내면 풍순리이며 번지는 미상이다. 또한 그는 경기도농회가 도내 전답 30정보 이상 소유 지주를 대상으로 작성한 지주명부에 수록되어 있었는데, 이는 이재록이 단순한 부농이 아니라 식민지기 경기도 차원에서 관리될 정도의 대규모 토지 소유자였음을 뜻한다.
1937년 6월 말 기준 이재록은 김포군 내에 논 33정보, 밭 6정보, 총 39정보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고용한 소작인 수는 87명이었다. 이 수치는 그가 단순히 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을 넘어, 다수의 소작농을 매개로 생산과 지대 수취가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대지주 경영 구조의 한 축에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87명의 소작인을 두었다는 사실은 토지 규모에 비해 소작 관계의 폭이 넓었다는 뜻이기도 하며, 김포 지역 농업 생산이 자작농 중심이 아니라 지주·소작 관계 위에서 유지되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재록의 의미는 단지 개인의 재산 규모에만 있지 않다. 읍내면 풍순리는 당시 군 행정의 중심 생활권과 연결되는 공간이었고, 그곳을 기반으로 한 대지주라는 점은 이재록이 단순한 농업 경영자를 넘어 지역사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 유지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현재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자료는 주소, 토지 규모, 소작인 수에 집중되어 있어, 그가 면협의회원이나 금융조합 임원, 학무위원 같은 별도의 공적 직책을 맡았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이 부분은 확실하지 않다.
결국 이재록은 일제강점기 김포 지역에서 토지 집중과 소작 경영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다. 그는 논과 밭을 합쳐 39정보를 소유하고 87명의 소작인을 거느린 대지주였으며, 이런 기록은 당시 김포 농촌 사회가 소수의 대지주와 다수의 소작농이라는 불균등한 구조 위에서 운영되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이재록은 개별 인물이라기보다, 식민지기 김포 농업 구조와 지역 유력층의 성격을 드러내는 사례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참고문헌: 『농지개혁시 피분배지주 및 일제하 대지주 명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5.12,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재력가』, 경기문화재단,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