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연구

남정채(南廷彩)

운영자

2026-04-21

남정채(南廷彩)는 일제강점기 김포군 양동면 신정리를 기반으로 활동한 대지주로, 당시 김포 지역의 토지 집중과 소작 경영 구조를 보여주는 사례다. 1935년 주소는 김포군 양동면 신정리로 확인되며, 1938년 경기도농회가 작성한 ‘30정보 이상 지주 명부’에 이름이 수록되었다. 이 명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전답을 가진 지주를 조사한 자료이므로, 남정채는 단순한 부농이 아니라 식민지기 경기도 차원에서 파악된 대지주층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1937년 6월 말 기준 그는 김포군 내에 논 22정보, 밭 11정보를 소유해 총 33정보의 농지를 보유했고, 고용한 소작인은 105명에 달했다. 같은 면적대의 지주들 가운데서도 소작인 수가 매우 많은 편이어서, 남정채의 토지 경영은 단순 소유를 넘어 다수의 농가를 포괄하는 대규모 소작 운영 구조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남정채의 의미는 단지 토지 규모에만 있지 않다. 그는 면협의회원 경력을 지닌 인물로도 확인되는데, 이는 경제력과 함께 지역 행정·자문 기구에도 관여했던 지역 유지형 지주였음을 보여준다. 식민지기 면협의회는 제한적이지만 지방 행정 운영과 지역 유력자 네트워크가 만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남정채는 토지 소유를 기반으로 사회적 영향력까지 확보한 인물로 볼 수 있다. 즉 그는 생산수단인 토지와 지역사회 내 제도적 발언권을 함께 가진 계층이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1935년 12월 남정채 소유의 임야 두 곳, 즉 부천군 소사면 개봉리 소재 1.07정보와 부천군 고척리 소재 1.29정보가 보안림으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의 재산이 김포군 농지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인접 지역 임야까지 포함하는 복합적 자산 구조를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다만 현재 제공된 자료만으로 그 임야의 구체적 이용 목적이나 경영 방식까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범위는, 남정채가 농지뿐 아니라 임야 자산도 가진 비교적 폭넓은 토지 소유자였다는 점이다. 

 

종합하면 남정채는 김포군 양동면 신정리를 거점으로 논과 밭 33정보를 소유하고 100명이 넘는 소작인을 거느린 대지주였으며, 동시에 면협의회원으로 활동한 지역 유력자였다. 그의 사례는 일제강점기 김포 지역에서 토지 소유, 소작 경영, 지방 행정 참여가 하나의 인물에게 결합되어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남정채는 식민지기 농촌 사회에서 경제 권력과 지역 지배력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었는지를 드러내는 인물이다. 

 

참고문헌: 『농지개혁시 피분배지주 및 일제하 대지주 명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5.12, 『조선총독부관보』, 1935.12.21,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재력가』, 경기문화재단,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