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연구

김동극(金東極)

운영자

2026-04-21

김동극(金東極)은 일제강점기 김포군 양촌면 일대에서 활동하던 대지주로, 식민지 농업 구조와 해방 이후 농지개혁의 변화를 함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의 주소는 1938년에는 양촌면 수적리로, 1950년에는 같은 면의 수참리로 확인되는데, 이는 해방 전후에도 동일한 생활권 내에서 토지 기반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속성은 해방 직후에도 기존 지주 구조가 즉각 해체되지 않고 일정 기간 지속되었음을 시사한다.

 

1937년 6월 말 기준으로 김동극이 소유한 토지는 논 28정보, 밭 12정보로 총 40정보에 달했으며, 54명의 소작인을 두고 있었다. 이 규모는 단순한 부농을 넘어 지역 농업 생산을 조직적으로 지배하는 중대 지주 계층에 해당한다. 특히 50명 이상의 소작인을 거느렸다는 점은 개별 농가 단위를 넘어 하나의 경영 단위로서 농업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는 위치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1938년 경기도농회가 작성한 ‘30정보 이상 지주 명부’에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명부는 식민지 농정 운영을 위해 대규모 토지 소유자를 파악·관리하기 위한 자료였다. 따라서 김동극은 단순한 지역 유지가 아니라 식민지 농업 체제 속에서 국가 권력에 의해 관리되던 핵심 경제 계층으로 볼 수 있다.

 

해방 이후 1950년에 시행된 농지개혁은 이러한 지주 계층을 해체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김동극 역시 개혁 대상에 포함되어 논 11.5정보, 밭 2.9정보, 총 14.4정보의 토지가 정부에 의해 유상으로 매수되었고, 이에 대한 보상은 439.8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수치는 당시 농지개혁이 단순한 몰수 방식이 아니라 일정한 보상을 전제로 한 제도였음을 보여주며, 기존 지주 계층이 완전히 배제되기보다는 새로운 경제 질서 속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반영한다.

 

결과적으로 김동극이라는 인물은 한 개인의 생애를 넘어, 식민지 시기 대지주 중심의 농업 구조가 해방 이후 농지개혁을 통해 해체되고 재편되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토지 규모, 소작 관계, 그리고 개혁 이후의 보상 기록은 김포 지역 농촌 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이며, 오늘날 서울 강서구 일대를 포함한 이 지역의 사회경제적 구조가 형성되는 데 중요한 역사적 단서를 제공한다.


참고문헌 : 『농지개혁시 피분배지주 및 일제하 대지주 명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5.12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재력가』, 경기문화재단,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