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전 이야기

투금탄(投金灘)

운영자

2026-04-19


투금탄(投金灘)은 오늘날 서울 강서구 가양동 일대, 특히 공암나루 앞 한강 여울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단순한 지리적 명칭을 넘어 지역의 윤리관과 인간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설화가 결합된 장소다. 이 이야기는 『양천읍지』에 기록되어 전해지며, 고려 말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형제 간의 우애와 도덕적 선택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설화의 핵심 구조는 매우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길을 가던 형제가 우연히 금덩이를 발견하고 이를 나누어 갖는다. 이후 공암진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중, 아우가 돌연 자신이 가진 금을 강물에 던져버린다. 형이 그 이유를 묻자, 아우는 “형을 사랑하고 존경해왔지만, 금을 나눈 뒤 오히려 형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형이 없었다면 금을 모두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형제의 정이 깨질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즉, 금이라는 물질적 가치가 인간의 도덕성과 관계를 잠식하는 순간을 스스로 자각한 것이다. 이에 형 역시 동생의 판단을 옳다고 여겨 자신이 가진 금까지 강에 던진다.

 

이 설화에서 주목할 지점은 ‘금을 버렸다’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이전 단계에서 이미 발생한 ‘마음의 균열’이다. 즉, 투금탄은 단순한 미담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욕망과 윤리 사이의 충돌을 드러낸 이야기다. 금은 단순한 재물이 아니라 관계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매개체로 등장하며, 이를 제거함으로써 형제는 다시 관계의 순수성을 회복한다. 이 점에서 투금탄 설화는 유교적 가치관, 특히 형제간의 의리와 도덕적 자기 절제를 강조하는 교훈담으로 해석된다.

 

지명 자체도 이러한 이야기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투금탄’은 문자 그대로 ‘금을 던진 여울’이라는 의미이며, 동일한 장소를 ‘투금뢰(投金瀨)’, ‘투금강(投金江)’ 등으로도 불렀다. 이 지명은 단순한 자연지형의 명칭이 아니라, 특정한 사건—혹은 사건으로 기억되는 이야기—을 통해 장소에 의미를 부여한 전형적인 사례다.

 

이 설화가 전해지는 공간인 공암진은 조선시대 교통의 요충지였다. 현재의 서울 강서구 개화동 일대에 위치한 이 나루는 한강 북쪽의 행주나루와 마주하며, 김포·강화에서 한양 도성으로 진입하는 주요 경로 중 하나였다. 비록 양화나루만큼 번성하지는 않았지만, 조선 후기에는 관선이 배치될 정도로 일정한 공적 기능을 수행했다. 나루 이름의 유래가 된 ‘공암(孔岩)’은 강가에 구멍이 뚫린 바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구멍바위나루’라는 별칭도 여기서 나왔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한강 지형 변화로 강 한가운데에 모래섬이 형성되면서 수로 기능이 약화되었고, 나루는 여러 차례 이전되다가 결국 폐지된다. 이후 이 지역은 근대 교통체계로 전환되며 나루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고, 현재는 행주대교가 그 자리를 대신해 남북을 연결하고 있다.

 

정리하면, 투금탄 설화는 단순한 ‘형제 우애 이야기’로 축소하기 어렵다. 이 이야기는 물질적 욕망이 인간관계를 어떻게 위협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스스로 절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윤리적 서사다. 동시에 특정한 역사적 장소—공암진—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며, 지역 기억을 구성하는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결국 투금탄은 지명, 설화, 그리고 역사적 교통 거점이 하나로 결합된 복합적인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