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강서구의 행정 권력은 근본적으로 전환된다. 임명되던 구청장이 사라지고,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구청장이 등장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제도 개편이 아니라, 도시를 움직이는 힘의 방향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던 구조에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구조로 뒤집힌 사건이었다. 민선 구청장들은 더 이상 국가의 대리인이 아니라, 주민의 선택에 의해 존재하는 정치적 책임자였다. 이들은 각자의 임기 동안 강서구라는 도시가 어떤 단계에 있었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초대 민선 구청장 유영은 제도의 출발점에 서 있었다. 1995년은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해였지만, 실제 행정 구조는 여전히 중앙집권적 관성 위에 놓여 있었다. 주민 참여는 제도적으로는 열렸지만, 실질적으로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이 시기의 과제는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요구가 행정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민원과 지역 요구가 행정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2대 민선 구청장 노현송이 취임하던 1998년은 외환위기 직후였다. 지방정부는 중앙의 보호 없이 지역 경제와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 시기부터 구청장은 단순한 행정 관리자가 아니라 지역 운영자, 즉 정치적 책임을 지는 존재로 바뀐다. 강서구 역시 인구가 증가하고 주거지가 확대되면서 자영업과 생활경제 중심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는 이때부터 실제 부담과 책임을 동반하는 제도로 작동한다.
3대 민선 구청장 유영은 다시 등장하지만, 그의 두 번째 임기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이미 한 차례 경험된 지방자치 위에서 행정은 점점 정치화된다. 주민 요구는 더 구체적이고 조직적으로 나타나며, 지역 간 경쟁도 본격화된다. 2000년대 초 강서구는 인구 증가와 함께 교육, 교통, 주거 문제가 핵심 의제로 부상한다. 이 시기는 단순한 제도 운영을 넘어 지역 발전 전략을 고민하는 단계였다.
4대 김도현은 짧은 재임 기간을 남겼지만, 이 시기는 지방자치의 또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정치적 갈등과 행정 내부의 긴장, 그리고 권력의 불안정성이 동시에 드러난 시기였다. 구청장은 더 이상 안정된 행정직이 아니라 정치적 변수에 따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자리였다. 그의 짧은 임기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지방자치가 아직 완전히 안정된 시스템으로 자리 잡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5대 김재현은 이러한 불안정 이후 등장해 구조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강서구는 이미 서울 서부의 대표적인 주거지로 자리 잡았고, 도시의 기본 틀은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 행정의 중심은 개발에서 관리로 이동하고, 교육, 복지, 생활환경 같은 삶의 질 문제가 핵심 의제로 떠오른다. 이 시기의 구청장은 도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를 유지하는 관리자였다.
6대, 7대, 8대 민선 구청장 노현송의 연속 재임은 강서구 민선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구간이다. 세 차례에 걸친 장기 집권은 지역 정치 구조가 안정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 강서구는 마곡지구 개발이라는 결정적인 변화를 맞는다. 대규모 산업과 연구 단지가 조성되고 기업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주거 중심 도시에서 일자리와 산업이 결합된 도시로 전환된다. 동시에 복지, 교육, 생활 인프라가 확대되며 주민 체감 정책도 강화된다. 이 시기는 강서구의 현재 구조가 만들어진 핵심 시기였다.
9대 김태우는 이 안정된 구조 위에서 출발했지만, 가장 짧은 임기를 남긴 인물이 된다. 지방자치가 완전히 정착된 시대일수록 정치적 책임과 검증은 더욱 강해진다. 구청장은 행정가이면서 동시에 강한 정치적 책임을 지는 자리로 변했고, 개인의 판단과 행위가 곧바로 정치적 결과로 이어지는 구조가 형성된다. 그의 짧은 재임은 지방자치의 성숙이 가져온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10대 진교훈은 보궐선거를 통해 등장하며, 이미 완성된 도시 위에서 출발한다. 지금의 강서구는 더 이상 외형적 확장이 중심이 되는 도시가 아니다. 대신 재개발, 지역 간 격차, 생활 환경, 지속 가능성 같은 문제가 중심으로 이동한다. 행정의 과제는 도시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도시를 어떻게 다시 조정하고 균형을 맞출 것인가에 있다. 이는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행정이다.
이 흐름을 보면 민선 구청장들은 단순히 사람의 교체가 아니라, 도시 단계의 변화와 정확히 맞물려 있다. 초대 유영이 틀을 만들고, 2대 노현송이 이를 현실에서 작동시키며, 3대 유영이 발전 전략을 고민하고, 4대 김도현과 5대 김재현이 불안정과 안정의 경계를 지나, 6대부터 8대까지 이어진 노현송 시기가 도시 구조를 완성하고, 9대 김태우가 정치적 책임의 무게를 드러낸 뒤, 10대 진교훈이 성숙한 도시의 재설계를 맡는다.
관선 시대가 국가가 도시를 설계하고 구축한 시간이었다면, 민선 시대는 주민이 그 도시의 방향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시간이다. 강서구는 이 두 흐름이 겹쳐진 결과로 형성된 도시이며, 지금의 모습은 그 긴 전환의 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