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강서구 관선 구청장

운영자

2026-04-19

 

강서구 관선 구청장 8인은 개별 인물이라기보다,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서울 서부 변두리가 도시로 편입되는 과정 전체를 통과한 행정 집단이다. 이들을 따로 떼어 보면 정보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실제로 각 인물의 상세 이력은 공개된 자료가 매우 제한적이며, 개별 행정 성과 역시 체계적으로 기록된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임기와 교체 흐름뿐이며, 나머지는 시대 맥락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이 글은 인물 개별 전기(傳記)가 아니라, 각 인물이 맡았던 ‘시대의 역할’을 복원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강서구의 관선 구청장 8인은 서로 다른 개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연속된 행정 구조 속에서 역할을 나눠 수행한 집단이다. 1977년 강서구가 신설되면서 시작된 이 체제는 1995년 지방자치제 전면 시행 전까지 유지되었고, 이 시기 구청장은 주민의 선택이 아닌 중앙정부와 서울시에 의해 임명된 관료였다. 따라서 이들을 이해하려면 개인의 이력보다, 각자가 맡았던 시대적 역할과 행정 기능을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

 

초대 구청장 박수복은 강서구라는 행정 단위가 처음 만들어지는 순간을 담당한 인물이다. 당시 강서구는 김포공항을 중심으로 한 군사·교통 기능이 우선된 지역이었고, 대부분은 농지와 미개발지였다. 초대 박수복의 역할은 도시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정 체계를 이식하는 것이었다. 면 단위 농촌 행정을 구 단위로 전환하고, 주민과 토지를 국가 관리 체계에 편입시키며, 공항 주변을 통제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는 지역 대표가 아니라 국가가 공간을 장악하기 위해 내려보낸 초기 관리자였다.

 

2대 신성호 시기에는 산업화로 인한 인구 유입이 본격화된다. 그러나 이 변화는 계획된 개발이 아니라 무허가 주택과 비공식 정착지의 확산으로 나타났다. 2대 신성호의 행정은 개발이 아니라 통제였다. 늘어나는 인구를 관리하고, 공항 주변 개발을 제한하며, 무질서한 주거 형성을 정리하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이 시기의 구청장은 도시를 성장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도시화의 충격을 완화하는 관리자였다.

 

3대 이문재는 9개월이라는 짧은 임기를 가졌지만, 그 위치는 중요하다. 1980년대 초반, 서울의 도시 정책은 통제에서 계획 개발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주거지 개발과 기반시설 투자가 확대되는 흐름 속에서, 3대 이문재는 행정 방향이 바뀌는 경계선에 서 있었다. 직접적인 성과보다, 행정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위치한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4대 김진욱 시기에 이르면 강서구는 본격적으로 도시화된다. 화곡과 등촌 일대에 대규모 주거지가 형성되고, 도로와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 구축되면서 인구가 급증한다. 행정의 중심은 통제에서 건설로 이동한다. 4대 김진욱은 강서구를 서울의 변두리에서 도시 구조 속으로 편입시킨 핵심 관리자였다.

 

5대 이원택 시기는 그 위에 형성된 도시를 확장하고 고정시키는 단계다. 주거지는 더욱 밀집되고, 상업시설과 생활 기반이 자리 잡으면서 강서구는 하나의 생활권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5대 이원택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인물이라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도시 구조를 안정시키고 고정한 행정가였다.

 

6대 유중호가 재임하던 1988년 전후는 서울 전체가 전환점을 맞는 시기였다. 올림픽을 계기로 도시 환경 정비와 생활 행정이 강조되었고, 강서구 역시 그 흐름 속에 있었다. 행정의 중심은 개발에서 생활로 이동한다. 6대 유중호는 도시를 확장하는 역할보다, 이미 형성된 도시를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정비하는 데 집중한 관리자였다.

 

7대 이경배 시기는 또 다른 과도기다.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하면서 중앙집권적 행정 구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여전히 임명직이었지만, 지역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 요구가 커졌다. 7대 이경배는 중앙의 지시와 지역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했던 인물이었다.

 

8대 도명정은 마지막 관선 구청장이다. 그의 임기는 단순한 종료가 아니라 체제 전환의 마무리였다. 1995년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를 앞두고 행정 구조를 정비하고, 권력의 방향을 중앙에서 지역으로 넘기는 과정을 담당했다. 8대 도명정은 중앙이 지역을 통제하던 시대를 정리한 인물이었다.

 

이렇게 보면 강서구의 관선 구청장들은 각각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다. 초대 박수복이 틀을 만들고, 2대 신성호가 혼란을 통제하며, 3대 이문재가 방향 전환의 경계에 서고, 4대 김진욱이 도시를 구축하고, 5대 이원택이 구조를 고정하며, 6대 유중호가 삶의 환경을 정비하고, 7대 이경배가 균형을 유지한 뒤, 8대 도명정이 체제를 마무리한다. 이들은 지역을 대표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강서구는 주민의 선택으로 성장한 도시라기보다 국가의 계획과 행정에 의해 설계되고 구축된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 관선 구청장들은 그 설계도를 실행한 사람들, 즉 권력의 얼굴이 아니라 권력의 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