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강서구청, 홍보정책과, URL)
서울 강서구 방화동 799번지, 금화낭길 222 일대에 위치한 느티공원에는 수령 400~500년에 이르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함께 서 있다. 이 가운데 은행나무는 1972년 10월 12일, 느티나무는 1974년 4월 20일 각각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며, 지정 당시 수령은 은행나무 약 435년, 느티나무 약 480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 기준으로 현재는 두 나무 모두 약 500년 전후의 노거수로 추정된다. 높이는 약 11m에서 17m 사이이며, 나무둘레는 은행나무 약 444cm, 느티나무 약 386cm로 확인된다. 일부 자료에서 높이가 더 크게 제시되기도 하나 이는 측정 시점과 개체 차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나무들이 자리한 곳은 과거 ‘능리’ 혹은 ‘능말’이라 불리던 자연부락의 중심부였다. ‘능말’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왕릉 조성 후보지와 관련된 전승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김포 장릉(원종 왕릉)이 이 일대에 들어설 예정이었다가 지형 조건 등의 이유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능이 들어설 뻔한 마을’이라는 의미가 남았다는 설명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 지명 유래는 문헌으로 완전히 입증된 사실이라기보다 지역 구전의 성격이 강해 일부는 확실하지 않다.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조선 중종 시기 좌의정을 지낸 심정에 의해 식재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역시 구체적인 사료로 확인되는 내용은 아니며 전승에 기반한 설명이다. 그러나 나무의 추정 수령이 중종 연간과 대체로 겹친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들 나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오랜 기간 마을 공동체의 중심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주민들은 나무 아래에서 모임을 열고 휴식을 취했으며, 음력 10월 상달에는 제를 올리는 풍습이 이어져 왔다. 이는 나무를 마을의 수호적 존재로 인식하는 전통적 생활문화의 한 단면이다. 여름철에는 그늘을 제공하는 쉼터로, 평상시에는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모이고 관계를 형성하는 중심 공간으로 작동하며 공동체 결속을 유지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1990년대 방화택지지구 개발로 능말 마을은 대부분 해체되었지만, 이 나무들은 제거되지 않고 현재 위치에 보존되었다. 1992년에는 지역 주민 약 20명으로 구성된 단체가 나무 인근에 ‘능말 옛터 애향비’를 세워 마을의 기억을 기록했다. 나무 주변에 자갈을 깔아 보호구역을 설정하는 등 주민 주도의 관리 흔적도 확인된다.
현재 느티공원에는 이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를 포함해 총 네 그루의 고목이 남아 있으며, 일부 개체는 수피 손상 부위에 보수 처리가 이루어지는 등 생육 유지 관리가 지속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노거수 특유의 균열과 굴곡이 나타나지만, 매년 계절에 따라 잎을 내며 경관적·생태적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이 나무들은 단순한 보호수를 넘어, 조선시대 자연부락의 형성부터 현대 도시 개발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시간의 층위를 물리적으로 증명하는 존재다. 자연유산이면서 동시에 공동체 기억의 매개체로 기능하는 이 사례는, 개발 이후에도 원위치에서 보존된 드문 사례로서 강서 지역 생활사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출처(강서구청, 홍보정책과,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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