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화곡동, 우장산 근린공원 중턱에 자리한 공항정은 단순한 체육시설이 아니다. 이곳은 사라진 활터의 계보를 잇고, 공항 개발에 밀려난 공간의 기억을 품은 채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살아 있는 전통’이다. 공항정의 시작은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폐쇄된 금능정의 맥을 잇기 위해 김포 지역 궁사들과 뜻있는 이들이 모여 활터를 다시 세운 것이 출발점이다. 이후 김포 일대에서 활터는 여러 차례 이동과 변화를 겪는다. 1949년 김포 송학정에서 분리되어 공항동 일대에 자리 잡았고, 1975년에는 김포공항 화물청사 부근에서 백호정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다가 이듬해인 1976년 ‘공항정’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그러나 이 활터의 역사는 안정이 아니라 이동의 역사다. 김포국제공항 확장이라는 거대한 국가 개발 사업은 결국 활터를 다시 밀어냈다. 1984년 공항 확장 공사에 편입되면서 기존 활터는 철거되었고, 1986년 지금의 우장산 자리로 옮겨왔다. 이후 1989년 공원 내 설치 허가를 조건으로 부지를 서울시에 기부채납하고, 같은 해 현재의 건물을 신축하면서 오늘의 공항정이 형성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이전이 아니라, 한 지역의 전통이 도시 개발 속에서 어떻게 밀려나고 다시 자리 잡는지를 보여주는 압축된 사례다. 공항정은 “원래 있던 곳에 남아 있는 공간”이 아니라, 여러 번 밀려나며 겨우 생존한 공간이다.
지금의 공항정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사대와 과녁이 마주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다. 인공적으로 평탄화된 경기장이 아니라, 자연 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활터다. 나무로 둘러싸인 산 중턱에서 과녁을 바라보는 풍경은 서울 도심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며, 이 점이 공항정을 단순한 스포츠 시설이 아니라 ‘경험의 장소’로 만든다. 실제로 이곳을 찾으면 활을 쏘기 이전에 먼저 공기와 풍경이 몸에 들어온다. 활시위를 당기는 행위는 그 다음이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국궁은 흔히 생각하는 스포츠와 다르다. 궁사들은 사대에 서기 전 “활을 배웁니다”라고 말하고, 이를 듣는 이들은 “많이 맞추십시오”라고 답한다. 승부의 긴장보다 예법이 먼저다. 국궁은 맞히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활은 원래 무기였기 때문에 심기가 흐트러진 날에는 잡지 않는다는 원칙도 여전히 이어진다. 이곳에서 활을 쏜다는 것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함께 다루는 수련에 가깝다.
기술적으로 보더라도 국궁은 현대 양궁과 전혀 다른 체계다. 사거리는 약 145m로 훨씬 길고, 조준 장치 없이 감각에 의존해 쏜다. 점수 체계도 없다. 어디든 과녁에 맞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활을 당기는 자세, 호흡, 집중, 그리고 예법까지 포함된 전체가 하나의 수행처럼 작동한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공항정에는 다수의 궁사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노년층 중심의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젊은 세대와 여성 궁사도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그러나 이 확장은 동시에 문제를 드러낸다. 시설은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고, 공간은 협소하다. 회원 수는 크게 늘었지만 사물함, 휴게 공간, 궁방 등 기본 시설은 포화 상태다. 빗물이 새는 지붕, 부족한 화살받이 모래, 정비되지 않은 풀밭 등은 활터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공항정은 두 개의 시간 위에 서 있다. 하나는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국궁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공항과 도시 개발 이후의 시간이다. 이 두 시간은 충돌하지 않고 공존한다. 비행기가 오가는 도시 한가운데서, 사람들은 여전히 활을 당기며 호흡을 고른다.
이곳은 빠른 도시의 흐름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장소다. 점수도 없고, 기록도 남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동작과 예법, 그리고 관계가 쌓인다. 공항정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있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