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유산

성주우물 은행나무

운영자

2026-04-19

성주우물 은행나무
사진 - 김경현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남아 있는 성주우물 은행나무는 단순한 노거수가 아니라, 이 지역의 시간과 기억이 응축된 상징적 존재다. 수령 약 430년에 이르는 이 나무는 1988년 강서구 보호수(서16-9)로 지정되었으며, 전승에 따르면 이유의 5대조가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더 나아가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이 남긴 『경교명승첩』 속에도 이 나무가 그려져 있어, 이미 오래전부터 한강 연안 양천 일대의 대표적인 경관 요소로 인식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 은행나무가 자리한 곳은 단순한 자연 공간이 아니라, 조선시대 양천현의 중심 공간과 맞닿아 있던 자리다. 인근에는 객사와 누정이 있었고, ‘성주우물’이라 불리던 샘이 함께 존재했다. 이 우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물로 알려져 수령이 사용하던 물이었으며, 그 이름 자체가 행정 권력과 연결되어 있다. 나무와 우물은 각각 생명과 지속, 그리고 보호의 상징으로 작동하며 하나의 생활·신앙 공간을 이루었다.

 

이러한 성격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성주우물 은행나무는 지역 주민들에게 단순한 보호수가 아니라 ‘신목’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양천역사보존회를 중심으로 매년 4~5월 길일을 택해 치성제가 올려진다. 제의 이후에는 나무가 더욱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막걸리를 붓는 의식도 이어진다. 이는 나무를 하나의 생명체이자 마을을 지키는 존재로 대하는 전통적 세계관의 연장이다.

 

이 나무에는 ‘한산모종’이라 불리는 설화도 전해진다. 은행나무 위 까치집을 노리던 구렁이로부터 새끼를 구해준 선비를, 이후 복수를 하려던 구렁이의 위협 속에서 어미 까치가 종에 머리를 부딪쳐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구해냈다는 이야기다. 결국 까치는 목숨을 잃지만, 그 희생으로 선비는 살아난다. 이 설화는 은혜와 보답, 희생과 구원이라는 구조를 통해 공동체의 윤리를 설명하는 동시에, 이 나무를 보호와 보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결국 성주우물 은행나무는 하나의 나무가 아니라, 조선시대 행정과 경관의 중심지였던 공간, 공동체의 생활과 신앙이 이어진 장소, 그리고 설화를 통해 의미가 부여된 상징적 대상이라는 세 층위가 겹쳐진 존재다. 지금의 모습은 2009년 이후 주민들의 참여와 정비 과정을 거쳐 유지되고 있지만, 그 본질은 훨씬 오래된 시간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 나무는 강서라는 지역이 어떻게 기억되고 지속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역사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