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업화 시기 강서구

운영자

2026-04-19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 시기의 강서구는 ‘도시가 확장되며 밀어낸 것들을 받아낸 공간’으로 규정된다. 이 시기 강서구는 스스로 성장한 도시라기보다, 국가 주도의 산업화와 서울 중심부 개발이 만들어낸 외곽 수용지로 기능하며 급격히 변형된다.

출발점은 전쟁 직후의 공백 상태다. 전쟁으로 인해 기존 농촌 공동체는 크게 흔들렸고, 김포공항을 중심으로 한 군사·교통 시설만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구조로 남았다. 이 상태에서 1960년대 국가 주도의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서울 도심은 빠르게 재편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인구와 기능이 외곽으로 밀려난다. 강서구는 바로 그 흐름을 받아내는 대표적인 지역이 된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주’다. 도시 재개발, 도로 건설, 산업단지 조성 등으로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강서구로 이동하면서, 이 지역에는 계획된 도시가 아니라 ‘이주단지’와 자연발생적 주거지가 형성된다. 방화동, 공항동, 가양동 일대에는 저층 주택과 판잣집이 밀집한 생활권이 만들어지고, 기존의 논과 밭은 점차 주거지로 전환된다. 이 변화는 내부의 필요가 아니라 외부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동시에 공항은 지역 구조를 지속적으로 규정한다. 김포공항은 민간 항공과 군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며 국가적 관문으로 자리 잡고, 이에 따라 도로망과 기반시설이 공항을 중심으로 정비된다. 그러나 이 시설은 지역 발전의 중심이 되기보다, 오히려 강서구를 ‘통과하는 공간’으로 만든다.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머무르지 않고 이동하며, 지역은 그 흐름을 지탱하는 주변부로 남는다.

 

공항 주변에서는 자연스럽게 시장과 상업 공간이 성장한다. 전쟁 직후 형성된 비행장터는 점차 공항시장으로 자리 잡으며, 노동자와 주민, 이동 인구를 연결하는 생활 경제의 중심이 된다. 이 시장은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라, 이주민들이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기반이었다. 즉, 강서구의 경제는 대규모 산업이 아니라 소규모 상업과 자영업, 비공식 경제에 의해 유지되는 구조였다.

 

1970~80년대로 들어서면서 강서구는 점차 도시화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도로가 확장되고, 학교와 공공시설이 들어서며, 일부 지역에는 아파트 단지도 조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역시 균일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이주단지와 혼재된 상태로 진행된다. 이로 인해 강서구는 계획된 도시와 비계획적 주거지가 뒤섞인 복합 구조를 갖게 된다.

 

이 시기를 관통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강서구는 생산 중심의 산업 도시가 아니라, ‘주거와 생존을 수용하는 도시’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공장이 집중된 지역과 달리, 이곳은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었고,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시장과 공동체가 형성된 곳이었다. 동시에 공항이라는 국가 인프라는 지역의 성장 가능성을 제한하는 조건으로 작용하며, 개발과 통제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중 구조를 만든다.

 

결국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 시기의 강서구는 세 가지 층위로 정리된다. 첫째, 공항을 중심으로 한 국가 인프라의 지속과 통제. 둘째,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밀려난 인구가 형성한 이주 중심 주거 구조. 셋째, 공항시장과 같은 생활 경제를 기반으로 유지된 자생적 공동체다. 이 세 가지가 겹치면서 강서구는 단순한 외곽이 아니라, 산업화의 그늘과 도시의 확장이 동시에 드러나는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이 시기를 통해 분명해지는 것은 하나다. 강서구는 발전의 중심에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중심의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로 형성된 도시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지역의 역사는 언제나 ‘누가 무엇을 밀어냈고, 그 결과 무엇이 남았는가’를 묻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