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해방 이후 한국전쟁까지의 강서구

운영자

2026-04-19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시기까지의 강서구는 하나의 전환기라기보다, 지배 주체만 바뀐 채 공간의 성격이 유지되고 확대된 시기에 가깝다. 이 지역의 핵심은 여전히 공항과 한강 하류라는 위치였고, 그 위에 군사와 이동, 그리고 불안정한 정착이 겹쳐지기 시작한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일제의 통치는 끝났지만, 강서구 일대의 구조는 곧바로 바뀌지 않는다. 특히 김포비행장은 폐기되지 않고 미군정에 의해 접수되어 군사 시설로 계속 사용된다. 이 시점부터 이 공간은 일본 제국이 아니라 미군, 그리고 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전략적 거점으로 기능하게 된다. 즉, 공간의 성격 자체는 유지된 채 권력의 주체만 교체된 것이다. 공항 주변은 일반적인 농촌과 달리 출입과 이용이 제한되는 통제 공간으로 남았고, 이는 지역의 생활 방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시기 강서구의 또 다른 특징은 농경지의 지속이다. 공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여전히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농촌이었고, 한강 하류의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한 농업 생산이 유지된다. 그러나 이 농촌은 더 이상 안정적인 공동체가 아니었다. 해방 직후 사회 혼란과 토지 문제, 그리고 정치적 불안 속에서 기존의 지주-소작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지역 사회 역시 점차 해체의 징후를 보인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강서구의 상황은 급격히 바뀐다. 김포비행장은 전쟁 초기부터 핵심 군사 거점으로 활용되었고, 인천상륙작전 이후에는 유엔군의 주요 공군 기지로 기능한다. 이 과정에서 공항 주변은 완전히 군사화되며, 민간인의 접근과 거주가 강하게 제한된다. 동시에 전투와 군사 활동의 영향으로 인근 지역의 일상은 붕괴에 가까운 상태로 흔들린다.

 

전쟁은 인구 구조도 바꾼다. 피난민들이 한강을 따라 이동하면서 강서구 일대에도 유입되기 시작하고, 공항 주변과 도로변에는 임시 거주지가 형성된다. 이들은 정착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임시 공간이었다. 기존의 마을은 유지되기보다 분해되고,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특히 시장과 노점, 임시 거주지 같은 형태는 이후 공항시장과 같은 구조로 이어지는 초기 단계였다.

 

이 시기의 강서구를 정리하면 세 가지가 겹쳐 있다. 첫째, 공항을 중심으로 한 군사적 통제 공간. 둘째, 여전히 유지되는 농경지와 전통적 마을 구조. 셋째, 전쟁으로 인해 유입된 피난민이 만들어낸 임시 생활 공간이다. 이 세 층위는 서로 충돌하면서도 동시에 공존했고, 이후 강서구의 도시 구조를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결국 해방 이후 한국전쟁 시기까지의 강서구는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이전에 형성된 구조가 극단적으로 강화되는 시기였다. 식민지 시기에 만들어진 공항은 전쟁을 통해 더욱 중요한 군사 거점으로 확장되었고, 농촌은 유지되었지만 안정성을 잃었으며, 사람들은 이동과 정착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였다. 이 시기를 거치며 강서구는 더 이상 단순한 농경지가 아니라, 군사·이동·생존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전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