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일제강점기 강서구

운영자

2026-04-19

일제강점기 강서구는 단순한 ‘농촌의 연장’이 아니라, 식민지 권력이 공간을 재편하는 방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역이다. 이 시기 강서구 일대는 행정적으로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양동면에 속해 있었고,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농경 중심 구조 위에 일본 제국의 수탈 체계가 직접적으로 얹히기 시작한다.

 

핵심은 토지다. 1910년대 진행된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기존의 토지 소유 관계가 재편되면서, 농민들은 자신이 경작하던 땅에서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강서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한강 하류의 비옥한 평야는 식민지 경제에서 ‘생산력 높은 농업지’로 재편되었고, 쌀은 자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 반출되는 상품이 된다. 이 과정에서 지역은 자립적인 농경 공동체에서 벗어나, 외부로 생산물을 공급하는 종속적 구조로 편입된다.

 

이 변화는 단순히 경제 구조에 그치지 않는다. 공간 자체가 바뀐다. 1930년대 후반, 김포비행장 건설은 이 지역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킨 사건이다. 활주로를 만들기 위해 주변의 지형이 대규모로 평탄화되었고, 기존 마을과 농경지는 강제로 이전되거나 해체되었다. 특히 일본군의 군사 전략에 따라 조성된 이 비행장은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라, 전쟁 수행을 위한 군사 거점이었다. 이 시점부터 강서구는 더 이상 ‘열려 있는 농촌’이 아니라, 군사적 목적에 따라 통제되는 공간으로 변한다.

 

이와 동시에 교통망도 재편된다. 도로와 철도는 지역 내부의 필요가 아니라, 군사와 물자의 효율적 이동을 위해 구축된다. 강서구 일대는 한강과 연결된 기존 수로뿐 아니라, 육상 교통망을 통해서도 식민지 경제의 흐름 속에 편입된다. 즉, 이 지역은 더 이상 ‘스스로 유지되는 공간’이 아니라, 외부 체계에 의해 조직되는 공간이 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인구와 사회 구조의 변화다. 일본인 지주와 사업가들이 일부 지역에 유입되었고, 농업뿐 아니라 소규모 산업과 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동시에 강제징용과 전시 동원 체제가 강화되면서, 지역 주민들은 노동력으로서 동원되거나 외부로 끌려나간다. 강서구 일대에서 확인되는 강제징용 명부는 이러한 구조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개인의 삶은 지역 공동체 안에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필요에 따라 분절되고 이동되는 단위로 재편된다.

 

결국 일제강점기의 강서구는 세 가지 축으로 정리된다. 첫째, 비옥한 농업지로서 수탈의 대상이 된 공간. 둘째, 김포비행장을 중심으로 군사적 거점으로 재편된 공간. 셋째, 주민들이 식민지 노동 체계 속으로 편입된 공간이다. 이 세 가지가 겹치면서 강서구는 이전까지 유지되던 농경 공동체의 질서를 잃고, 외부 권력에 의해 구조적으로 재편된 지역으로 변한다.

 

이 시기의 변화는 이후까지 이어진다. 공항이라는 시설은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지역의 중심 구조를 규정했고, 전쟁과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되는 이주와 시장, 주거 구조 역시 이때 만들어진 틀 위에서 전개된다. 결국 일제강점기는 강서구가 ‘땅의 역사’에서 ‘권력에 의해 설계된 공간’으로 전환되는 결정적 분기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