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강서구는 오늘날처럼 하나의 도시 단위가 아니라, 양천현과 김포 일대에 속한 농경 중심 지역으로 존재했다. 이 지역의 성격은 이미 이전 시대부터 형성된 한강 하류의 충적 평야 위에 놓여 있었고, 조선은 이를 새롭게 개발하기보다 기존의 토지와 마을 구조를 그대로 계승하는 방식으로 통치했다. 『동국여지승람』에 “본조인지(本朝因之)”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을 보여준다. 즉, 강서구 일대는 조선이 새롭게 만든 공간이 아니라, 이전부터 존재하던 농경 공동체를 제도 안으로 편입한 결과였다.
이 시기 강서구의 핵심은 분명하다. 첫째는 농업 생산지로서의 기능이다. 한강 하류의 비옥한 토지는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업에 적합했고, 이 지역에서 생산된 곡물은 한강 수로를 통해 한양으로 운반되었다. 강서구는 수도를 직접 떠받치는 식량 공급지였던 셈이다. 둘째는 교통과 유통의 거점이다. 한강과 연결된 수로는 단순한 자연 지형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핵심 인프라였고, 이 지역은 물류가 지나가는 길목으로 작동했다. 셋째는 군사적 완충지대라는 성격이다. 한강 하류와 서해로 이어지는 위치는 외부 침입에 대한 경계선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중심 도시라기보다 수도를 보호하는 외곽 공간으로 기능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강서구의 마을들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유지되었다. 방화, 개화, 가양 등 현재까지 이어지는 지명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그 형태가 굳어졌으며, 각각의 마을은 논과 수로를 중심으로 한 생활 단위였다. 특히 한강과 연결된 나루터와 포구는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이었고,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접점 역할을 했다. 다만 이러한 지점들이 공식적인 도시로 발전하지는 않았는데, 이는 조선의 도시 체계가 철저히 한양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강서구는 도시가 아니라 ‘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외곽 생산지’로 기능했다.
또한 이 지역은 자연환경과 끊임없이 긴장 관계에 놓여 있었다. 한강 하류의 특성상 홍수와 범람이 잦았고, 이는 농경과 거주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마을은 단단한 도시 구조로 성장하기보다, 환경에 적응하며 유지되는 형태를 띠었다. 이 점에서 강서구의 조선시대 모습은 ‘안정된 중심’이 아니라 ‘조정되는 주변’이었다.
결국 조선시대 강서구는 정치·행정의 중심이 아닌 대신, 국가 운영을 지탱하는 기반으로 작동한 공간이었다.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된 곡물, 한강을 통한 물류 이동, 그리고 수도를 둘러싼 완충지대라는 역할이 겹치면서 이 지역의 성격이 규정되었다. 눈에 드러나는 권력의 중심은 아니었지만, 그 중심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황덕과 동향 같은 오래된 지명이 이어지고, 조선이 이를 그대로 계승했다는 사실은 이 지역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일한 기능을 유지해왔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