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화산 크루는 특정 지역에 깊이 뿌리내린 공동체라기보다, ‘개화산’이라는 이름이 환기하는 감각—서울의 외곽, 중심에서 비껴난 장소, 다시 말해 ‘서울이면서도 서울 같지 않은 곳’—을 전략적으로 차용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한 힙합 크루였다. 2000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모인 이들이 작업실을 기반으로 결성한 이 집단은, 실제 공간으로서의 개화산보다 그 이름이 지닌 상징성에 더 가까이 서 있었다. 그것은 지리적 좌표라기보다 태도에 가까웠고, 중심에 편입되지 않은 채 주변에서 발화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들이 2005년에 발표한 컴필레이션 앨범 《정당한 선택》은 그러한 태도가 가장 밀도 높게 응축된 결과물이다. 참여한 Paloalto, Rama, GLV, Soul One 등은 이후 각자의 경로로 흩어졌지만, 이 시기만큼은 하나의 집단적 목소리를 형성한다. 이 앨범에서 반복되는 주제는 명확하다. 자본 중심 사회에 대한 거부,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감각, 그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선택하려는 의지다. 「정당한 선택」에서 드러나는 ‘money’에 대한 집요한 반복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구조 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다.
다른 트랙들 역시 이 흐름을 공유한다. 「감동의 무대」와 「수퍼두퍼 개화」에서 드러나는 공격적인 어조와 ‘폭동’, ‘폭격’과 같은 언어는 과장이 아니라 자기 선언에 가깝다. 이들은 기존 힙합 씬의 문법을 답습하기보다, 자신들이 서 있는 위치—주변부, 비주류, 불안정한 삶의 조건—를 전면에 드러내며 그것을 미학으로 전환한다. 이는 단순한 음악적 스타일이 아니라, 당시 청년 세대가 체감하던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다. IMF 이후의 불안정한 노동 환경, 고착되는 계층 구조, 그리고 그 속에서 선택 가능한 삶의 폭이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이 이들의 가사 전반에 배어 있다.
한편 「개화산 Blue」는 이 집단의 또 다른 층위를 보여준다. 반복되는 노동과 무기력한 일상, 도시가 개인에게 가하는 피로와 압박이 보다 정서적인 언어로 풀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탈출’의 이미지다. 바다, 바람, 휴식과 같은 요소들은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도시적 삶에서 잠시 이탈하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이때의 도시는 특정 지역이라기보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한국형 도시의 보편적 조건을 가리킨다. 그렇기에 이 곡은 강서구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서울 아닌 서울’이라는 감각을 공유하는 모든 장소로 확장된다.
개화산 크루의 활동은 길지 않았다. 군입대와 생계 문제, 그리고 각자의 방향으로의 이동은 집단의 지속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후 이들은 개별 활동으로 분화되며, 일부는 하이라이트 레코즈와 같은 새로운 구조 안으로 편입된다. 이 과정에서 개화산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전면에 등장하지 않지만, 그 안에서 형성된 관계와 감각은 다른 형태로 이어진다. 이는 개화산이 하나의 완결된 팀이라기보다, 특정 시기와 조건 속에서 생성된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개화산은 강서구라는 지역에 대한 단순한 귀속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강서구라는 공간이 지니고 있던 외곽성, 경계성, 중심과의 거리감을 하나의 상징으로 끌어와 자신들의 언어로 재구성한 사례에 가깝다. 《정당한 선택》이라는 제목은 그 점에서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한 음반명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며, 동시에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이 기록은 강서구 문화사에서 또 하나의 층위를 드러낸다. 공항, 시장, 재개발과 같은 물리적 역사 바깥에, 이름과 이미지, 그리고 감각을 통해 구성된 문화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개화산은 바로 그 비물질적 층위의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은 그 이름으로 활동하는 집단은 사라졌지만, ‘서울 아닌 서울’이라는 감각과 그 위에서 만들어진 언어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특정 시기의 산물이면서도, 동시에 지금 이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은 과연 정당한가.
* 당시 개화산 크루 작업실 주소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금낭화로 61 지하1층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