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강서구

김금숙 작가 그래픽 노블 '아버지의 노래' - 방화동, 공항동

운영자

2026-04-18


서울의 끝,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과 공항동. 이곳은 지도 위에서는 분명히 서울이지만, 감각적으로는 언제나 경계에 가까운 장소였다. 방화동과 공항동은 오랫동안 비행기 소음 아래 놓인 채, 개발과 통제, 이주와 정착이 반복된 공간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아버지의 노래”는 한 가족의 기억을 통해, 이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이 이야기 속에서 방화동과 공항동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조건이며, 인물들의 선택을 제한하고 방향을 결정짓는 구조 그 자체다. 김포국제공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 지역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 빠르게 재편된 공간이었다. 활주로가 놓이고 군사적·국가적 기능이 우선되면서, 그 주변은 언제나 ‘잠정적인 거주지’로 남겨졌다. 사람들은 머물렀지만, 정착하지 못했고, 집은 있었지만 삶은 임시적인 상태로 지속되었다.

 

“아버지의 노래”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임시성의 일상화’다.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묵묵히 일하고, 가족은 그 곁에서 버티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언제든 밀려날 수 있는 자리 위에 놓여 있다. 공항 확장, 도로 개설, 도시 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된 이주와 재정착은, 한 세대의 삶을 끊임없이 흔들어왔다. 이곳에서 ‘집’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늘 다시 만들어져야 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은 단순한 결핍의 장소로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불안정성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삶을 이어간다. 골목은 관계의 단위가 되고, 시장과 작은 가게들은 생존의 기반이 된다. 한 집의 이야기는 곧 이웃의 이야기로 확장되고, 결국 하나의 지역 기억으로 축적된다. 이곳의 역사는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만들어진다.

 

방화동과 공항동은 서울의 중심 서사에서 자주 비켜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노래”는 그 주변부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광장의 역사나 국가의 서사가 아닌, 그 바깥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 그것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이야기이며,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다.

 

이곳의 기억은 이미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삶의 층위이기 때문이다. 방화동과 공항동은 단지 ‘공항 옆 동네’가 아니라, 국가와 도시의 구조 속에서 형성된 삶의 현장이며, 그 안에서 이어져 온 수많은 ‘아버지의 노래’가 쌓여 있는 자리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노래를, 더 이상 주변의 소음으로 흘려보내지 않으려 한다. 기록한다는 것은 남기는 일이 아니라, 다시 듣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