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유산

서울 양천 고성지(서울 陽川 古城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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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7

출처 - [서울 양천고성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울 양천고성지(서울 陽川古城址)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궁산 정상부에 축조된 고대 산성으로, 1992년 사적 제372호로 지정된 국가문화유산이다. 이 성곽은 신라가 한강 유역을 장악한 6세기 중반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며, 둘레 약 380m, 면적 약 29,752㎡ 규모의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성은 한강과 직접 맞닿은 낮은 구릉인 궁산(해발 74.3m)을 감싸듯 축조되었다. 테뫼식 산성은 산 정상부를 둘러 방어선을 형성하는 구조로, 양천고성은 이러한 형식을 따르면서도 성벽 내부를 흙으로 채우고 외벽을 돌로 쌓는 내탁식(편축식) 축조 방식이 확인된다. 성벽은 현재 훼손이 심해 일부 구간에서만 2단에서 최대 9단 정도의 잔존 상태가 확인되며, 북벽과 남벽에는 각각 치성(방어 돌출부)이 존재한다.

 

발굴 조사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총 5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성벽의 기저부에는 기단석을 안정적으로 지지하기 위한 턱이 조성되어 있었고, 기단부에는 할석과 점토, 기와를 섞어 보강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특히 북벽 일대에서는 성벽 붕괴 이후 보축(補築)된 흔적과 함께 추가된 치성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 성이 한 차례 이상 개축되었음을 보여준다.

 

출토 유물은 이 성의 연대를 규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성 내부에서는 격자문·선문 계열의 기와와 함께 8세기대로 편년되는 인화문 토기가 확인되었으며, 성벽 내부에서 수습된 목탄의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결과 역시 6세기 중엽에서 8세기 후반 사이의 값을 보인다. 이러한 자료를 종합하면, 양천고성은 신라가 553년 한강 유역을 확보한 이후 축조되어 통일신라 시기까지 유지·보수되며 사용된 성곽으로 판단된다.

 

이 성의 기능은 명확하다. 한강 하류와 서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상, 양천고성은 서해에서 한강을 따라 내륙으로 진입하는 수상 교통로를 감시·통제하기 위한 군사 거점이었다. 즉 단순한 지역 방어 시설이 아니라, 한강 유역 전체의 통제 전략 속에서 구축된 전초기지 성격의 성곽이다.

 

이후 고려시대까지도 일정 부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미 조선 초기 시점에서 “성산 고성은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전기에 이르면 기능을 상실하고 폐성된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해방 이후 미군이 이 일대를 군사 기지로 사용하면서 성벽과 내부 유적이 크게 훼손되었다.

 

양천고성지의 가치는 단순히 성곽 하나에 있지 않다. 이 유적은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 통일신라기의 방어 체계, 그리고 한강 수로 통제 전략을 동시에 보여주는 핵심 군사 유적이다. 또한 현재 서울 서부 지역에서 확인되는 드문 고대 성곽이라는 점에서, 강서구 일대가 단순한 변방이 아니라 고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출처 - [서울 양천고성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출처 - [서울 양천고성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출처 - [서울 양천고성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적제372호_서울양천고성지
출처 -[국가유산청], [공공누리(사이트상세 URL)]

 

사적제372호_서울양천고성지
출처 -[국가유산청], [공공누리(사이트상세 URL)]

 

사적제372호_서울양천고성지
출처 -[국가유산청], [공공누리(사이트상세 URL)]

 

양천고성지
사진 - 김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