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유산

풍산심씨 묘역(豊山沈氏 墓域)

운영자

2026-04-17

사진출처 - [풍산심씨 문정공파 묘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풍산심씨 묘역(豊山沈氏 墓域)은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조선 전기 문신 심정과 그의 자손들이 묻힌 집단 묘역으로, 지정 면적은 약 2,584㎡에 이른다. 이 일대는 풍산 심씨가 대대로 모여 살던 집성촌으로 형성되어 ‘심씨마을’이라 불렸으며, 현재도 약 50여 기에 달하는 분묘가 남아 있다. 이 가운데 문화유산적 가치가 높은 심정, 심사손, 심사순, 심수경 네 인물의 묘와 묘비·상석 등 석조 유물이 중심이 되어 1991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묘역의 중심 인물인 심정(1471~1532)은 중종반정에 참여해 정국공신에 오른 뒤 한성판윤과 형조판서를 지낸 권력 핵심 인물이었다. 그러나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사림 세력과의 갈등 속에서 정치적 부침을 겪었고, 이후 기묘사화를 통해 사림을 숙청하는 데 깊이 관여하였다. 말년에는 권력 투쟁 속에서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으며, 사후 이곳 개화산 자락에 묻히면서 풍산 심씨 묘역의 중심이 형성되었다. 그는 생전에 이 일대에 소요정(逍遙亭)을 짓고 일가를 이루어 거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아들 심사손(1493~1528)은 문과에 급제해 승정원과 예문관 등에서 활동하다가 변방 수비를 맡아 북방에서 공을 세운 무관이었으나, 야인과의 전투 중 전사하였다. 또 다른 아들 심사순(1496~1531)은 홍문관 부제학까지 오른 문신으로, 김안로 일파의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추국을 받다가 생을 마쳤다. 손자인 심수경(1516~1599)은 문과 장원 출신으로 대사헌과 도승지, 영중추부사를 역임한 인물이며, 임진왜란 때에는 삼도체찰사로서 의병을 모집하는 등 군사적 역할도 수행하였다. 그는 문장과 서예에도 능해 자신의 묘갈문을 직접 짓고 수정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묘역이 자리한 개화산 일대는 과거 ‘능골’ 혹은 ‘능리’라 불리며 왕릉 후보지로 검토되었던 지역으로, 풍수적으로 명당으로 인식되던 곳이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속에서 풍산 심씨 가문은 이곳에 집단 묘역을 조성하고 세대를 이어 정착하였다.

 

풍산심씨 묘역은 단순한 가족 묘지가 아니라, 조선 전기 권력 핵심 가문이 서울 서부 지역에 뿌리내리고 형성한 가문 기반 공간이자 정치·사회적 흔적이 집적된 장소다. 현재까지도 묘역과 석물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어, 조선 전기 사대부 가문의 묘제와 지역 정착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사진출처 - [풍산심씨 문정공파 묘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풍산심씨 묘역
사진 - 김경현

 

풍산심씨 묘역
사진 - 김경현

 

풍산심씨 묘역
사진 - 김경현

 

풍산심씨 묘역
사진 - 김경현

 

풍산심씨 묘역
사진 - 김경현

 

풍산심씨 묘역
사진 - 김경현

 

풍산심씨 묘역
사진 - 김경현

 

풍산심씨 묘역
사진 - 김경현

 

풍산심씨 묘역
사진 - 김경현

 

풍산심씨 묘역
사진 - 김경현

 

풍산심씨 묘역
사진 - 김경현

 

풍산심씨 묘역
사진 - 김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