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양(朴一陽, 1901~1981)은 일제강점기 김포 지역에서 기업 활동과 공적 직책을 함께 수행한 대표적 지역 유지였다. 확인되는 자료에 따르면 그는 김포공립소학교와 서울 봉명학교를 졸업한 뒤, 김포지역 운수업의 시초로 평가되는 두밀상회(斗密商會)를 창업하였다. 또한 김포금융조합 조합장, 한강수리조합 이사, 김포의용소방대장 등을 지냈고, 해방 이후에도 김포 선거관리위원회 부위원장, 대한노인회 김포지부 회장, 우지서원 원장, 김포향교 전교를 맡았다. 이 이력은 박일양이 단순한 사업가를 넘어, 경제·사회·지역 공공영역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그의 핵심적 의미는 김포 지역 근대 교통·운수업의 형성과 지역 유지층의 결합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두밀상회 창업은 단순한 개인 사업의 시작이 아니라, 김포에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연결하는 지역 상업·운수 기반의 형성과 맞닿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현재 공개적으로 바로 확인되는 자료 범위에서는 두밀상회의 정확한 설립 시기, 사업 규모, 노선 체계까지는 알 수 없다.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박일양이 김포 운수업의 초창기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박일양은 경제 활동에만 머문 인물도 아니었다. 금융조합 조합장과 수리조합 이사 경력은 그가 농업 금융과 수리 체계 같은 지역 생산 기반에도 관여했음을 뜻한다. 식민지기 지방 사회에서 금융조합과 수리조합은 농촌 경제 운영에 직접 연결되는 핵심 기구였기 때문에, 이러한 직책은 단순 명예직이라기보다 지역 자원과 경제 흐름에 대한 발언권을 의미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여기에 의용소방대장, 향교 전교, 노인회 지부장 같은 역할까지 더해 보면, 박일양은 산업·금융·사회단체·유교적 지역 질서를 가로질러 영향력을 행사한 복합적 지역 지도층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또한 1937년 12월 8일자 『동아일보』 「김포지방소개판」에서 박일양이 “김포사회의 중진”으로 소개되었다는 점은, 적어도 1930년대 후반 당시 그가 김포 지역사회 내부에서 중심적 위상을 가진 인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현재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범위는, 박일양이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를 거치며 김포 지역의 기업·금융·사회조직을 잇는 중심적 유지였다는 점이다.
참고문헌: 김포시사편찬위원회, 『김포시사』 Ⅲ, 김포시, 2011,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재력가』, 경기문화재단,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