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연구

권갑중(權甲重)

운영자

2026-04-17

권갑중(權甲重)은 일제강점기 후반 경기도 김포군수와 수원군수를 역임한 지방 행정 관료로, 식민지 통치 체계의 지역 실행을 담당한 인물이다. 그는 1937년 11월 3일 김포군수로 부임한 것이 확인되며, 같은 해 12월 동아일보 「김포지방소개판」에 군수로 등장함으로써 당시 재임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후 그는 수원군수로 이동하여 계속해서 군수직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력은 단순한 지역 행정 경험을 넘어, 일제의 지방 통치 구조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관료의 전형적인 이동 경로에 해당한다. 특히 김포와 수원은 모두 농업 생산과 행정 통제 측면에서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군수는 이들 지역에서 식량 생산 관리, 조세 징수, 치안 유지, 전시 동원 정책 집행까지 포괄적으로 담당하는 위치에 있었다. 권갑중은 이 두 지역을 거치며 식민지 행정 권력의 중추에서 활동한 인물로 이해할 수 있다.

 

해방 이후에도 그는 행정 체계에 잔류하여 물가행정처 국장을 지낸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식민지 시기 고위 관료들이 해방 이후에도 국가 행정에 재편입된 사례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력은 곧 문제로 이어졌다. 1949년 5월 20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권갑중을 반민족행위 피의자로 체포하였으며, 이 사실은 같은 해 5월 23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일제시 수원군수를 지내고 해방 이후 물가행정처 국장을 역임한 자”로 명시되어 있어, 식민지 시기의 행정 경력이 문제의 핵심이었음을 보여준다.

 

김포군수 권갑중과 수원군수 권갑중이 동일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두 직위를 연결하는 단일 문서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동일한 이름, 동일 시기, 동일 직급, 그리고 해방 이후 행정 경력과 반민특위 체포 기록까지 일치한다는 점에서 동일 인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이는 단순한 개인 이력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권력 구조 속에서 형성된 관료가 해방 이후까지 이어지다가 결국 청산 대상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권갑중이라는 인물은 한 지역의 군수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김포와 수원을 거쳐 식민지 행정을 수행하고, 해방 이후 국가 관료로 재편입되었다가 다시 반민특위의 조사 대상이 된 인물로, 한 개인의 이력 속에 식민지 통치와 해방 이후 청산의 긴장이 응축된 존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