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4월 경기중학생 홍승면(洪承勉)이 소요가〔春之賦〕를 작사하고, 2·26 당시 일본 군부의 반란부대가 부른 혁명가 곡조를 붙여 어느날 점심시간에 전교생을 강당으로 모은 뒤 미리 등사한 16절의 소요가를 가르치다가 학교당국에 의하여 해산되었고, 가사내용에 민족적 색채가 있다 하여 홍승면은 무기정학을 당하였다.
이 소요가사건 이후 일부의 학생들은 교정에 있는 괴화수(槐花樹)로부터 이름을 따서 이 단체를 조직하였다. 1944년 12월에는 진학을 앞둔 상급학생들이 김포비행장으로 근로동원되자, 이 괴회 회원들이 주동이 되어, 학생들을 강제로 작업장에 끌어낸 데 대하여 일본인 교사를 심하게 구타한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출처 : 괴회(槐會)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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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회(槐會)’는 1944년 서울에서 조직된 항일 학생운동 조직이지만, 그 의미를 강서구 맥락에서 보면 단순한 학교 내부 사건이 아니라 김포비행장—즉 오늘날 강서구 공항동·방화동 일대—과 직접 연결된 학생 저항 사건으로 읽힌다.
이 단체의 출발은 경기중학교 내부에서 일어난 ‘소요가 사건’이다. 홍승면이 민족적 색채를 담은 노래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치다 징계를 받은 이후, 일부 학생들이 교정의 괴화나무에서 이름을 따 ‘괴회’를 조직한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학교 내부 항일 학생 조직이다. 그러나 이 조직이 역사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지점은 이후 행동이다.
1944년 12월, 일본은 전시 동원 체제 속에서 학생들을 김포비행장으로 강제 동원한다. 김포비행장은 당시 일본군 항공 거점으로, 군사 시설 확장과 유지에 학생 노동력이 투입되던 공간이었다. 이때 괴회 소속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학생들을 강제로 끌어내는 일본인 교사를 집단으로 구타하는 사건을 일으킨다. 이는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전시 동원 체제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물리적 저항이다.
강서구의 역사 속에서 이 사건이 갖는 의미는 명확하다. 김포비행장은 단순한 공항이 아니라, 일제 말기에는 군사 기지이자 식민지 동원의 핵심 공간이었다. 이곳은 농민의 토지가 수용되고, 지역 주민과 학생들이 강제 노동에 동원되던 장소였다. 즉 강서구는 이미 이 시점에서 ‘전쟁 수행을 위한 식민지 공간’으로 재편된 상태였다. 괴회 사건은 바로 그 공간에 대한 저항이 도시 내부가 아니라 강서구라는 외곽 현장에서 폭발한 사례다.
또한 이 사건은 기존의 항일운동과 성격이 다르다. 1910~30년대의 조직적 독립운동이나 지하 비밀결사와 달리, 괴회는 학교 단위의 느슨한 결사였고, 행동 역시 계획된 봉기가 아니라 상황 속에서 발생한 직접적 폭력 저항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중요하다. 1944년이라는 시점은 이미 대부분의 조직적 항일운동이 붕괴된 이후이며,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만들고, 강제 동원 현장에서 일본인 교사를 공격했다는 것은 식민지 말기에도 저항의 에너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괴회는 서울의 학생 조직이지만, 그 결정적 행동은 김포비행장—즉 현재 강서구—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이 단체는 단순한 학생운동이 아니라, 강서구가 일제 말기 군사·노동 동원 공간이었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그 공간에서 실제 저항이 발생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적 조직이다. 오늘날 공항과 도시로 덮여 있는 강서구의 표면 아래에는, 이렇게 전쟁과 동원, 그리고 저항이 교차했던 층위가 분명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