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명 해방일보
대표표제어 해방일보_1950_0902_01
자료구분 문서(노획문서)
언어 국한문
국내소장처 이화여대(사업팀)
권호 63
발생소(지역) 서울시
발행사 해방일보사
필자(소속)
지명 미국
인명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유·엔
사건명 임진왜란
원문
여러분! 지난 8월 □4일에 소집되였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우리 조국에 대한 미제의 무력침공을 반대하여 미국 침략군을 우리 조국 강토로부터 철퇴케하며 또는 미제의 지시에 의하여 동족상잔의 내란을 도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제의 무력적 침공을 적극적으로 협조하여주는 민족반역자들을 인민재판에 회부 할 데 대한 문제를 토의한 후 전체 조선 인민에게 보낸 조국전선 중앙위원회의 호소문을 채택하고 8월 15일부터 27일에 이르는 동안 동 호소문을 지지하는 서명운동을 전 인민적 운으로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발의에 의하여 전개된 조선 인민의 성명서에 대한 서명운동은 우리 조국에 대한 미제의 침략군을 즉시 조선으로부터 철퇴시키고 또한 미제 무력간섭의 적극적 협조자인 리승만 매국도당을 조선 인민의 반역자로 인민재판에 회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기치 하에 조국의 통일독립을 달성하기 위하여 종국적 승리를 쟁취할 때까지 끝까지 싸울 데 대한 남북조선 전체 인민의 한결같은 의지와 지향을 시위하는 거대한 정치적 사변으로 되였습니다. 전체 조선 인민에게 보낸 조국전선 호소문은 수백만부를 인쇄 배포 되였으며 라디오 출판물들을 통하여 널리 우리 조국 방방곡곡에 광범히 전달 되였습니다. 조선 인민의 성명서에 대한 서명운동은 우리 조국에 대한 미제의 무력침공자들과 그들을 협조하는 리승만 매국역도들을 반대하는 전 인민적 분노와 증오의 분위기 속에서 전개 되였습니다. 자기 나라와 자기 인민을 사랑하는 전체 조선 인민들은 고상한 애국심과 정치적 열성을 다하여 서명운동에 참가하였습니다. 조국전선 호소문이 발표된 첫날부터 공화국의 전 지역에 걸쳐 매 공장 기업소 기무 농촌 학교 직장들에서는 조국전선 호소문을 열렬히 지지하는 직장 대회 보고회 연설회들이 진행 되였으며 자기의 의사와 열의를 표명하는 전 인민적 서명운동이 전개되였습니다. 직업 성별 정치적 견해 신교의 차이를 불문하고 전체 조선 인민들은 한결같이 조국전선 호소문을 지지해 나섰으며 심지어 리승만 괴뢰국 회원들 까지도 서명운동에 자진 참가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미제 강도놈과 함께 경남 경북의 한 모통이에 몰려간 이미 운명지어진 리승만 매국도당들과 아직 해방되지 못한 경상남북도의 좁은 지역에 있는 소수 인민들을 제외하고는 16세 이상 전체 조선 인민들의 절대다수가 조선 인민의 성명서에 서명하면서 미제와 리승만 도당을 반대하여 싸울 한결같은 굳은 의향을 표명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숫자들이 명확히 증명하여주고 있습니다. 조선 인민의 성명서에 서명한 자의 총 수는 남북조선을 통하여 1천□백21만9천1백2명이며 그중 남반부에서 서명 참가자 수는 7백91만9천2백61명이며 북반부에서는 5백□9만9천3백41명이 서명하였습니다. 이것을 도별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시 52만9천9백명 경기도 1백54만1천5백명 남강원도 65만6백□1명 충청북도 58만1천9백41명 충청남도 93만4천5백9명 전라북도 1백28만7천3백69명 전라남도 1백50만3천2백27명 경상북도 48만3천4백46명 경상남도 40만5천3백38명 평양시 16만1백55명 평안북도 81만3천7백45명 평안남도 84만3천9백78명 강원도 76만7천7백90명 함경북도 55만6천4백27명 함경남도 89만5천5백61명 자강도 32만3천7백명 이와 같이 조국전선 호소문을 지지하여 서명에 참가한 총 인원수는 16세 이상의 우리 조국 전체 주민의 약 98%를 차지합니다. 조선 인민의 성명서에 대한 서명운동이 얼마나 높은 정치적 수준에서 진행되였는가는 다음의 숫자들이 명백히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조국전선 호소문이 발표되자 공화국 전 지역을 걸쳐 7만2천2회의 직장대회 및 기타 군중집회들이 진행되였는데 이 회의들에서는 17만1천1백6명이 미제의 무장침범자들과 그 주구들을 반대하여 최후의 승리를 쟁취할 때까지 싸우겠다는 전 인민적 굳은 결의를 표명하는 연설들을 하였습니다. 서울시 철도로동자 홍종식 씨는 자기의 연설에서 『유·엔은 미 제국주의 강도들을 하루바삐 조선에서 철거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리승만 역도들은 조선 사람의 탈을 쓴 미국 놈들이며 우리 조선 인민의 철천의 원쑤로서 반드시 인민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반드시 놈들을 처단하기까지 견결히 싸워야한다.』라고 하였으며 북반부의 공장로동자 오춘판 씨는 『조국의 통일독립을 갈망하는 우리의 형제자매를 무참히 살륙하며 조선 인민의 로력에 의하여 이룩된 공장제조소 학교 구락부 병원들을 파괴하기에 미쳐 날뛰는 미 제국주의자들을 우리 강토로부터 구축하며 천추에 사무칠 갖은 매국 배족적 행위를 다 한 리승만을 비롯한 악질 반역자들을 반드시 재판에 회부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농민 안삼경 씨는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여가지고 우리 조국을 침략하는 미국 강도들을 유·엔은 반드시 징계하여야할 것이며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옹호하는 유·엔의 정신에 립각하여 침략자를 반드시 제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리승만 김성수 리범석 신성모 윤치영 백성욱 신익희 장면 등 어느 한 놈도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조선 인민의 성명서에 서명함으로써 우리의 견결한 의지를 시위하며 투쟁결의를 새로히 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조국전선 호소문을 지지하는 소위 남조선 국회의원 5명의 성명서에는 『우리들 전 괴뢰 『국회』 의원이였던 5명은 조선 인민들과 더불어 이 호소문을 적극지지하며 조선 인민의 성명서에 자진 서명하였다. 조선 인민들은 자기 조국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과 애국적 정성으로써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반드시 미제를 우리 강토에서 격멸한 것이며 인민의 원쑤 리승만 도당들을 엄격히 처단하고야 말 것이다. 우리들 전 괴뢰 『국회』 의원이였던 5명은 미국 간섭자들의 침략군대를 즉시 철거시킬 것과 미국 간섭자들의 충실한 방조자인 리승만 도당들을 조선 인민의 반역자로 처단하여야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작가 리기영씨는 자기의 연설에서 말하기를 『미 제국주의자들은 지금 우리들이 가꾸어 놓은 아름다운 조국 강토를 평화 인민들의 피로 물들였으며 우리들이 건설한 문화 시설들을 혹심하게 파괴하고 있다. 놈들은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고 있으며 농사짓는 평화로운 농민들에게 기총소사를 감행하고 있다. 우리는 조선에 대한 미국 무력간섭을 즉시 중지시키며 외국 간섭자들의 군대를 조선으로부터 철거시킬 데 대한 방책을 취할 것을 유·엔에 요구하도록 호소한 조국전선 호소문을 절대 지지하며 이에 서명할 것이다. 그리고 리승만 리범석 김성수를 비롯한 몇 놈 안 되는 매국노들을 단연 인민재판에 회부할 것을 찬동한다.』고 하였으며 류봉사 목사는 지적하기를 『우리 기독교인들은 원쑤들의 야수적 무차별 폭격을 통하여 미국인이 부르짖고 있는 소위 인도주의니 박애주의니 하는 것의 정체를 똑똑히 알았다. 그들이 항상 소리높이 부르짖고 있는 소위 인도주의는 흉악 무비한 침략자의 정체를 엄폐하는 연막에 지나지 않았었다. 우리 민족의 철천지 원쑤인 미국 강도배들의 항공기는 매일같이 평화적 도시들과 농촌을 폭격하여 로인ㅂ터 어린애 할 것 없이 무차별 살상하고 있다. 평양시내에 있는 일부 교회들도 놈들의 폭격에 의하여 적지않은 피해를 입었다. 지금 전체 기독교인들은 원쑤들에 대한 적개심을 일층 격발시키면서 조국해방전쟁의 종국적 승리를 위하여 한결같이 총궐기하고 있다. 우리들은 지금 진행 중에 있는 『교인호』 비행기헌납운동을 하루속히 성과 있게 완수하여 조국의 무력강화에 기여하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전체 조선 인민들은 그 누구를 물론하고 미제의 무력침공을 반대하며 리승만 역도들을 반대하여 한결같이 조국해방전에 총궐기하였으며 조국전선의 호소문을 지지하는 자기의 의사를 표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심히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조선 인민의 력사에는 먼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강토에 침략해온 여러 강점자들의 만행과 그를 반대한 우리 인민들의 영웅적 전쟁과 사변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미국 강도들의 만행은 우리 조국 력사에 있는 모든 강점자들과 략탈자들의 만행을 릉가하고 있습니다. 오늘 미제의 무력침공자들은 우리 강토를 인민들의 피바다로 만들며 우리 인민의 재산을 회신시키며 우리의 경제를 파괴하며 평화적 도시들과 농촌들을 재떼미로 만들며 무고한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있습니다. 16세기말 임진왜란 시 풍신수길의 지휘 하에 왜놈들이 우리나라에 침공하여 우리 강토를 가장 잔혹하게 유린하고 조선 인민에 대한 략탈과 살륙을 진행하다가 명장 리순신 장군이 지휘한 우리 군대들에게 격멸당하였습니다. 오늘 맥아더의 지휘 하에 무력침공자들이 우리나라와 우리 인민을 반대하여 감행하고 있는 야수적 폭행과 만행은 우리 력사에 기록된 풍신수길의 지휘 하에 왜놈들의 폭행과 만행을 멀리 릉가하고 있습니다. 미 제국주의자들은 우리 조국에 대한 무장적 침략을 개시한 이래 2개월 동안 우리나라에서 무엇을 하였습니까?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조국을 자기의 식민지로 원몽에서의 침략기지로 전환시킬 계획을 실행하려고 애쓴 미 제국주의자들은 리승만 매국도당을 사수하여 동족상쟁의 내란을 도발하여 놓고 곧 자기의 륙해공군을 총동원하여 우리 조국에 대한 무장적 침공을 시작하였습니다. 미국 해군은 조선 령해에 대한 봉쇄를 선언하고 매일같이 우리 동해안과 서해안의 도시들과 농촌들을 함포사격하며 미국 항공기들은 매일같이 전쟁 목표와는 하등의 관계없는 평화적 도시들과 농촌들을 무차별적 투탄질을 하여 우리들이 해방 후 5년 동안 갖은 고난을 극복하면서 복구 건설해 놓은 우리의 공장 기업소들과 병원 학교 구락부 기타 문화시설들을 매일같이 계획적으로 파괴하고 우리 인민의 주택지대를 회신시키며 벌써 수만 명에 달하는 부인 어린애 할 것 없이 평화적 주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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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2일자 「해방일보」에 실린 이 문서는 한국전쟁 초기 북한 측 선전의 정점을 보여주는 자료로, 김포군 양동면—오늘날 서울 강서구 일대—를 포함한 남반부 전체를 하나의 정치적 공간으로 묶어 전쟁의 정당성과 체제 결집을 동시에 구축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이 글은 단순한 지역 기사나 사건 보도가 아니라, ‘전 인민적 서명운동’이라는 집단 행위를 통해 전쟁을 민중의 의지로 전환시키는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다.
문서의 핵심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의 호소와 그에 대한 전국적 호응이다. 서명운동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미군 철수와 이승만 정권 처단을 요구하는 정치적 선언으로 설정되며, 이를 통해 남북을 포괄한 ‘조선 인민 전체의 의지’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16세 이상 인구의 98%가 서명에 참여했다”는 수치는 현실 검증이 어려운 과장된 표현일 가능성이 크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의 정확성이 아니라 ‘전 국민적 합의’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이 흐름 속에서 강서구는 다시 한번 구체적 사례로 호출된다. 김포군 양동면 농민 안삼경의 발언은 농민이 겪은 수탈과 전쟁 피해를 강조하면서, 서명운동 참여를 ‘애국적 의무’로 정당화한다. 이는 앞선 등촌리 사례들과 동일한 구조를 반복한다. 즉 강서구 농민의 삶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외세에 의해 착취당하고 파괴된 현실로 재구성되며, 그에 대한 응답으로 정치적 결단—서명, 투쟁, 전쟁 지지—이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강서구는 농업 지역이라는 구체적 공간을 넘어, ‘피해를 입은 민중’과 ‘저항하는 주체’를 동시에 상징하는 장소로 기능한다.
이 문서에서 한층 강화되는 것은 역사적 비유다. 임진왜란을 언급하며 일본의 침략과 현재의 미군 개입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를 ‘역사상 최악의 침략’으로 규정하는 방식은 강한 감정 동원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비교는 강서구를 포함한 지역 주민들에게 현재의 전쟁을 단순한 정치적 충돌이 아니라, 민족 생존을 건 역사적 투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장치다. 즉 지역의 경험은 민족 서사로 확대되고, 개인의 고통은 역사적 정당성으로 전환된다.
또한 이 문서는 강서구를 포함한 농촌 지역이 단순히 피해를 입는 공간이 아니라, 전쟁 수행의 기반으로 조직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앞선 기사들에서 토지개혁과 군자금 헌납, 의용군 참여가 연결되었다면, 여기서는 그 모든 흐름이 ‘전 인민적 의지’라는 틀 속에서 통합된다. 농민, 노동자, 학생, 종교인 등 다양한 집단이 동일한 메시지를 반복하며 등장하는 것은, 사회 전체가 하나의 정치적 방향으로 결집되어 있다는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구성이다.
강서구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이 문서는 매우 중요한 전환기의 기록이다. 등촌리를 포함한 양동면 일대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소작농 중심의 농업 사회였고, 토지 문제는 실제로 지역 주민들의 삶을 규정하던 핵심 요소였다. 그러나 이 자료에서는 그 현실이 전쟁과 체제 선전의 재료로 재구성되며, 지역은 더 이상 생활의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동원의 현장으로 변한다. 이후 김포공항 건설과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이 지역이 완전히 다른 성격의 공간으로 재편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문서는 강서구가 농촌 사회에서 국가적 정치 서사 속으로 편입되는 마지막 국면을 보여주는 자료로 읽힌다.
결국 이 글에서 강서구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농민의 삶과 감정, 그리고 전쟁과 체제가 교차하는 정치적 무대다. 서명운동이라는 형식을 통해 개인의 의사는 집단의 의지로 통합되고, 그 집단은 다시 전쟁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이 점에서 이 문서는 강서구라는 지역이 어떻게 역사적 사실을 넘어 정치적 상징으로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