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명 조선인민보
대표표제어 조선인민보_1950_0902_03
자료구분 문서(노획문서)
언어 국한문
국내소장처 이화여대(사업팀)
권호 63
발생소(지역) 서울시 태평로 1가 31
발행사 조선인민보사
필자(소속)
원문
【서울 27일발 조선중앙통신】 해방된 인민들의 드높은 정치적 열성 속에서 선거된 각급 인민위원회는 진정한 인민의 주권기관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각급인민위원회에서는 토지개혁이 가저온 감격을 전선과 련결시키는 농민들의 증산투쟁을 인민군원호사업의 확대 의용군 참가탄원들을 옳게 지도하여 종국적인 승리를 위하여 더욱 분투할 기세를 드높이고 있다. 김포군 양동면 등촌리 인민위원회에서는 이미 실시된 토지개혁으로 땅을 찾게 된 농민들이 앞을 다투어 전렬에 참가하겠다고 탄원한 청년 중에서 80여 명을 인민의용군으로 내보내었다. 땅을 지키는 농민들은 전쟁을 하루속히 종결시키기 위하여 수매사업을 전개하여 이미 자기들의 목표량을 8·15 해방 5주년 기념일까지 완수하였다. 이러한 열정은 증산투쟁으로 전환되어 농민들은 자발적으로 공동작업반을 조직하고 의용군에 나간 가족들을 원호하며 제초사업과 청초채취 등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이미 전 농토의 제초작업을 완료하였다. 이번에 논 2천평을 분여받은 농민 송산모 씨는 다음과 같이 결의를 말하였다. 『40평생을 죽도록 일하여도 항상 굶어오던 내가 이번에 당 2천평을 받았다 나는 금후 인민위원회가 지도하는 새로운 영농방법으로 힘껏 일하여 명년 중에는 기어코 소 한마리를 살 작정이다. 인민위원회의 덕택으로 무료로 치료도 받을 수 있고 또 우리 같은 무식한 농민에게 가르쳐주려고 애쓰는 위원들을 볼 때 참 새로운 힘이 나온다.』 양주군 구리면 인창리 인민위원회에서는 자기들의 리승만 통치시대의 빛나는 항쟁을 자랑하면서 자기들의 정권기관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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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1950년 한국전쟁기 「해방일보」가 전하는 조선중앙통신 기사로, 김포군 양동면 등촌리—오늘날 서울 강서구 등촌동 일대—를 배경으로 토지개혁 이후 농민과 전쟁 동원이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선전 서사다. 앞선 토지 분배와 소유권 증명서 교부가 ‘해방’의 감정으로 조직되었다면, 여기서는 그 감정이 곧바로 전쟁 참여와 생산 동원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기사의 중심은 인민위원회다. 인민위원회는 단순한 행정기구가 아니라 “인민의 주권기관”으로 규정되며, 토지개혁으로 형성된 농민의 감격을 전선과 연결하는 핵심 장치로 등장한다. 등촌리에서는 토지를 분배받은 농민들의 자녀와 청년 가운데 80여 명이 인민의용군으로 자원했다고 서술되는데, 이는 토지개혁이 단순한 경제적 변화가 아니라 군사적 동원으로 직결되는 통로였음을 보여준다. 즉 “땅을 받은 농민 → 체제에 대한 충성 → 전쟁 참여”라는 일관된 흐름이 형성된다.
이 구조는 생산 영역에서도 반복된다. 농민들은 수매사업을 통해 목표량을 조기에 달성하고, 공동작업반을 조직해 제초와 채취 작업을 완료하는 등 집단적 노동에 참여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개별 농민의 생존을 위한 농업이 아니라, 전쟁 수행을 위한 집단적 생산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특히 가족 중 일부가 의용군으로 나간 상황에서 남은 인력이 공동작업을 통해 농사를 유지한다는 서술은, 마을 전체가 전쟁 체제 안으로 편입되었음을 보여준다.
송산모라는 농민의 발언은 이 서사의 핵심을 압축한다. 그는 평생 가난과 굶주림 속에 살다가 2천 평의 토지를 분배받았고, 이제는 소를 사겠다는 미래 계획을 말한다. 동시에 무료 치료와 교육을 제공하는 인민위원회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새로운 삶의 동력을 얻었다고 서술된다. 이 장면은 토지개혁이 단순한 경제적 분배를 넘어 복지, 교육, 의료를 포함한 ‘새로운 체제의 삶’을 제공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이 역시 개인의 경험을 통해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전형적인 선전 방식이다.
이 내용을 강서구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중요한 전환 지점이 드러난다. 등촌리를 포함한 양동면 일대는 일제강점기까지 소작농 중심의 농업 구조가 유지되던 지역이었고, 토지에 대한 권리의 부재는 실제 농민들의 삶을 규정하던 조건이었다. 이 문서는 바로 그 구조를 뒤집었다는 서사를 통해 강서구 일대를 ‘해방된 농촌’으로 재정의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해방은 곧바로 전쟁 동원과 결합되며, 농민은 토지의 주인이 되는 동시에 국가와 전쟁에 종속된 존재로 다시 위치 지어진다.
결국 이 자료에서 강서구는 단순한 지역 사례가 아니라, 토지개혁을 매개로 한 감정의 조직, 그리고 그 감정이 전쟁과 생산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여기서의 등촌리는 더 이상 단순한 농업 마을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농민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정치적 현장으로 기능한다. 이후 김포공항 건설과 도시 확장을 거치며 이 지역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재편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문서는 강서구가 농촌에서 도시로 전환되기 직전, 가장 강하게 정치화된 순간을 포착한 기록으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