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태(權寧兌)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 332번지에 거주하던 인물로, 경성공립농업학교에 재학했던 학생이다. 그의 존재는 1932년 3월 20일 간행된 「京農」 제8호에 수록된 교우회 회원명부를 통해 확인되며, 당시 그는 양잠과 제5학년에 소속된 통상회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경성공립농업학교는 식민지 시기 농업 생산력 증대와 농촌 통제 강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대표적인 실업 교육기관으로, 특히 양잠과는 일본의 생사(生絲) 산업과 직결된 중요한 교육 분야였다. 따라서 권영태가 양잠과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농업 교육을 넘어 당시 제국 경제 구조 속에서 요구되던 특정 생산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잠은 조선 농촌에서 현금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주요 산업이었고, 일본은 이를 적극적으로 장려·통제하며 식민지 경제에 편입시켰다.
그의 주소지인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는 한강 하류에 위치한 농업 지역으로, 논농사와 함께 부업으로 양잠이 병행되던 곳이었다. 이러한 지역적 조건을 고려할 때, 권영태는 지역 농업 기반과 연결된 실용 기술을 습득하여 가업을 계승하거나 지역 경제 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또한 농업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 기반이나 교육에 대한 인식이 있는 가정 출신일 가능성도 있다.
다만 현재 확인 가능한 자료는 재학 당시의 학적 정보에 한정되어 있어, 졸업 여부나 이후의 직업, 해방 이후 행적 등 구체적인 생애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권영태는 1930년대 초 김포 지역 청년이 식민지 농업 교육 체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술을 습득하고 지역 경제와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적 인물로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