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연구

고바야시 초베에(小林長兵衛)

운영자

2026-04-17

고바야시 초베에(小林長兵衛)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일본인 건설 청부업자이자 산업 자본가로, 철도·토목·농업 개발·광업·제련·중공업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사업을 확장한 인물이다. 1878년 일본 효고현 출신으로, 일본에서 미야자키구미(宮崎組)의 지배인으로 일하며 토목·건축 공사 경험을 쌓았고, 마이즈루 군항 건설공사에도 관여한 뒤 1905년 10월 미야자키구미 대표 자격으로 조선에 건너와 철도 공사에 종사했다. 1909년 독립한 뒤에는 고바야시구미(小林組)를 운영하며 토목건축 청부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했고, 경성 용산 영정을 거점으로 식민지 조선의 각종 기반시설 사업에 깊숙이 참여했다. 

 

그는 단순한 청부업자에 머물지 않았다. 초기에는 용산 지역 일본인 사회 내부에서 영향력을 키우며 용산소방조장(龍山消防組長)을 맡았고, 1908년과 1910년에는 용산 수해 구호와 용산 거류민단 소방기구 구입비 기부로 통감부로부터 목배(木杯)를 하사받기도 했다. 특히 용산민단이 고등소학교 설립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자, 그는 민단에 3만 원을 연 10퍼센트 이자로 빌려주고 다시 그 학교 공사를 자신이 맡게 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그가 단순한 기부자라기보다, 식민지 일본인 사회 내부의 공공사업과 자본 흐름을 동시에 장악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자선과 공공성의 외형을 띠면서도 실제로는 금융·건설·지역 권력을 결합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그는 양동식산(陽東殖産)의 핵심 경영진으로 참여해 김포군 양동면 목동리를 본점으로 한 대규모 농업 개발 사업에 관여했다. 양동식산은 토지 개간, 과수·채소 재배, 식림, 목축 등을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국유미간지 대부와 개간을 중심으로 한 식민지형 농업 개발 회사였다. 고바야시 초베에는 가메와리 야스조(龜割安藏) 등과 함께 이 회사의 이사 및 대주주 계열 인물로 장기간 참여했으며, 양동면 일대의 토지 개간과 농업 생산 기반 형성에 직접 연결되었다. 당시 양동면과 양서면은 오늘날 서울 강서구 대부분과 양천구 일대로 이어지는 옛 김포군 행정구역이므로, 그는 현재의 강서구·양천구 공간이 식민지 농업 개발 체계에 편입되는 과정에 깊이 개입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활동은 농업 개발에서 다시 광업·제련·중공업으로 확장된다. 1918년 설립된 이원철산주식회사(利原鐵山株式會社)에서는 이사로 참여했고, 이 회사는 철광 채굴과 광산물 매매, 운송을 담당하며 이후 더 큰 중공업 네트워크의 기반이 되었다. 1930년대에는 일본고주파중공업주식회사(日本高周波重工業株式會社) 설립에 대표 또는 사장으로 참여했고, 일본마그네사이트화학공업주식회사(日本マグネサイト化學工業株式會社)에서는 사장을 맡았다. 또 조선제련주식회사 사장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이 회사는 해방 후 삼성광업을 거쳐 한국광업제련공사로 이어지는 계보의 출발점이 된다. 이 밖에도 일본공업합자회사, 동북목장주식회사, 학성광업주식회사, 국산자동차공업주식회사 등 여러 기업에 직접 대표·사원·주주로 참여했다. 즉 그는 건설업으로 시작해 농업 개발, 광산 개발, 금속 제련, 중공업 제조, 운송, 목축업까지 하나의 자본 네트워크 안에서 연결한 인물이었다. 

 

여기에 더해, 고바야시 초베에는 조선에서의 사업 활동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일본 본토의 교통 기업 경영에도 관여한 것으로 확인된다. 제시된 자료에 따르면 그는 1941년부터 1943년까지 고베아리마전기철도(神戸有馬電気鉄道) 사장을 지냈다. 이는 그가 조선에서 활동한 지방 청부업자 수준이 아니라, 일본 본토의 철도회사 최고경영자 자리까지 맡을 정도로 자본과 인맥을 축적한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더 주목할 점은 이후 이 회사의 사장을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가 맡았다는 사실이다. 같은 성씨와 기존 기업 명부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인물 구성을 고려하면, 고바야시 초베에가 조선과 일본을 오가는 산업 네트워크 안에서 가문 또는 측근 중심의 경영 계열을 형성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두 사람의 정확한 친족 관계는 현재 자료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다. 

 

이러한 이력은 고바야시 초베에를 단순한 “성공한 일본인 사업가”가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공간과 자원을 재편하는 데 깊이 관여한 일본인 자본가로 보게 한다. 철도와 토목 공사로 진입하고, 용산 일본인 사회의 공공사업과 결합하며, 양동면 일대 농업 개간으로 토지 개발에 개입하고, 다시 철광·제련·중공업으로 확장한 그의 경로는 식민지 개발 자본의 전형적인 이동 경로를 보여준다. 특히 강서구의 전신 공간인 옛 김포군 양동면·양서면과의 연결은 우연이 아니라, 그가 직접 관여한 양동식산과 수리·개간 사업을 통해 형성된 구체적 관계였다. 

 

정리하면, 고바야시 초베에는 조선에 건너와 토목건축 청부업으로 기반을 닦은 뒤, 용산 일본인 사회의 공공사업과 금융 흐름을 장악하고, 양동식산을 통해 오늘날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로 이어지는 옛 양동면 일대의 농업 개발에 관여했으며, 이후 이원철산·조선제련·일본고주파중공업 등으로 대표되는 광업·제련·중공업 분야까지 자본을 확장한 식민지 조선의 핵심 일본인 산업 자본가였다. 나아가 1940년대에는 일본 본토 철도회사 사장직까지 맡았다는 점에서, 그는 조선과 일본을 연결하는 광역 산업 네트워크의 상층부에 올라선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