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연구

최대희(崔大熙)

운영자

2026-04-17

현재 확인되는 자료만 놓고 보면, 최대희(崔大熙)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직접 확인되는 핵심은 1940년 『漢商 졸업기념 사진첩 제4회』의 졸업생 명부에 그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고, 주소가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외발산리 217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자료는 그가 1940년 무렵 한성상업학교 재학생이었거나 졸업생이었음을 보여주는 1차 단서다.

 

한성상업학교는 1928년 경성실업전수학교로 출발했고, 1936년 한성상업학교로 교명을 바꾸었으며, 1939년에는 3년제 제1본과와 5년제 제2본과 체제로 개편되었다. 즉 최대희가 이름을 올린 1940년의 한성상업학교는 식민지 말기 조선인 청소년에게 상업 실무와 근대 경제 질서를 교육하던 실업학교였다. 실업학교 자체도 당시 조선교육령 체계 아래에서 상업·공업·농업 등 특정 실무 인력을 양성하는 제도로 운영되었다. 따라서 최대희는 단순한 “학생”이라기보다, 농촌 지역 출신으로서 근대 상업교육을 이수한 식민지 후기의 실업교육 수혜층으로 보는 것이 객관적이다.

 

그의 주소가 양서면 외발산리로 기록된 점도 중요하다. 외발산리는 당시 김포군 양서면 소속의 농촌 지역이었다. 그런 곳의 청년이 경성의 상업학교에 진학했다는 사실은, 1930~1940년대 김포 일대에서도 일부 가구가 자녀를 도시 실업학교에 보내 회계·상업·사무 능력을 익히게 하며 사회적 이동을 모색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 점은 교육사적 맥락에서 가능한 해석이지, 최대희 개인의 가계 수준이나 진학 경위를 직접 입증하는 자료는 아직 없다.

 

반면, 졸업 이후 행적은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웹상에서 확인 가능한 범위에서는 기업 명부, 신문 기사, 지역 인물 기록 등에서 이 인물을 동일인으로 특정할 수 있는 후속 자료를 찾지 못했다. 검색 과정에서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들이 보이지만, 김포군 양서면 외발산리 출신의 한성상업학교 졸업생과 연결되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취업 여부, 관공서 진출, 지역 복귀, 창씨개명 여부, 해방 이후 활동 등은 지금 단계에서 말할 수 없다.

 

정리하면, 최대희(崔大熙)는 1940년 한성상업학교 졸업생 명부에 확인되는 김포군 양서면 외발산리 출신의 실업교육 이수자다. 그가 등장하는 시기는 일제강점기 말기로, 조선인 청년들이 상업학교를 통해 근대 경제 조직에 필요한 실무 교육을 받던 시기와 맞물린다. 현재 자료만으로는 그를 지역 유지, 기업인, 관료, 독립운동가 등으로 확장해 서술할 수 없고, 가장 정확한 평가는 “김포 농촌 지역 출신으로 경성의 상업교육을 이수한 식민지 후기 학력 인물” 수준에 머문다.

 

최대희는 1940년 한성상업학교 졸업생 명부로 확인되는 김포 양서면 외발산리 출신의 근대 상업교육 이수자이지만, 이후 행적은 현재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