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연구

이대영(李大泳)

운영자

2026-04-17

이대영(李大泳)은 1920~1930년대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일대에서 활동한 인물로, 양천수리조합(陽川水利組合) 조합장과 양동면장(1929~1939)을 겸임한 지역 지배층이다. 그는 한강 하류 저지대의 치수 사업과 농업 기반 정비를 담당한 핵심 인물로, 수리조합과 지방 행정을 동시에 장악한 점에서 당시 지역 권력 구조의 중심에 위치한다.

 

양천수리조합은 1923년 설립 이후 가양리·염창리·마곡리·방화리 등 한강 연안 저지대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구역에서 제방 축조와 배수 체계 구축을 추진한 조직이었다. 이대영은 조합장으로서 이러한 사업을 총괄하며, 반복되는 홍수와 범람에 대응하는 치수 사업을 운영했다. 그러나 수리조합은 단순한 재해 대응 기구가 아니라, 조합비 부담과 공사 지연, 배수 시설 미비로 인해 소작인과 주민들의 불만이 집중되는 구조이기도 했다.

 

실제로 가양리와 염창리 사이 제방 공사가 예산 부족으로 지연되면서 주민들이 대회를 열고 총독부와 관계 당국에 진정을 준비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대영은 조합장으로서 공사 진행 상황과 당국과의 교섭 내용을 설명하며 주민들의 직접 행동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그가 단순한 기술적 관리자가 아니라, 식민지 권력과 지역 사회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중간 권력자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양동·양천 수리조합 대표들과 함께 총독부를 상대로 한 진정에 참여하여 국고 보조금 확대, 조합 채무 경감, 저리 대출 등의 요구를 제기했다. 이는 조합의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 과정이었으며, 동시에 식민지 행정 체계와 직접 접촉하며 지역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한편 이대영은 신명신사(神明神祠) 설립 허가를 받은 인물로도 확인된다. 이는 당시 식민지 통치 하에서 추진된 신사 체계 확장과 연결되는 행위로, 그가 단순한 경제·행정 인물을 넘어 식민지 권력 구조와도 일정하게 결합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이대영은 양천수리조합과 양동면 행정을 동시에 장악하며, 치수 사업을 매개로 국가 권력과 지역 사회를 연결한 인물이다. 그는 홍수라는 자연 조건과 식민지 개발 정책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행정·자본·지역 주민을 조정한 중간 권력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대영은 양천수리조합과 양동면 행정을 기반으로 한강 하류 치수 사업과 지역 사회를 통제·조정한 식민지 시기 김포 양동면의 핵심 지역 권력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