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연구

옥천정미소(玉川精米所)

운영자

2026-04-17

(B120)종이지도_1976_서울_376080747602_005k
출처 - 국토정보플랫폼

지도 정중앙에 옥천도정공장(玉川搗精工場)이라고 쓰여있다.

 

옥천정미소(玉川精米所)는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157번지)를 거점으로 운영된 곡물 도정 시설로, 식민지 시기 형성된 농업 생산 기반이 해방 이후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1959년 기준 자료에서 고항작(高恒作)이 운영한 것으로 확인되며, 백미와 정맥을 중심으로 한 도정업을 통해 지역에서 생산된 곡물을 소비 가능한 형태로 가공·유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양동면 일대가 일제강점기 국유미간지 개간을 통해 형성된 농업 생산지였다는 점에서, 이 정미소는 해당 생산물을 처리하는 핵심 시설로 기능했다.

 

이 정미소의 기원은 식민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0년경 고항작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 양곡 도정 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여기서 말하는 정부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제국의 식민 통치 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사업은 단순한 개인 창업이 아니라, 식민지 국가 권력의 통제 아래 허가된 양곡 처리 시설이었으며, 당시의 식량 통제 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된 산업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후 해방을 거치면서 이 시설은 조선인 개인 자본에 의해 계승된다. 고항작의 아들 고영우가 이를 이어받아 운영하면서 장학 사업을 병행했고, 손자인 고건상이 1979년 군 제대 후 옥천공장을 이어받으면서 3대에 걸친 가업 형태로 지속된다. 고건상은 서울시민에게 공급되는 정부미를 대량으로 도정하며 상당한 자본을 축적했는데, 이 역시 국가 주도의 양곡 유통 체계와 연결된 사업 구조 속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83년 공장을 정리하고 임대사업으로 전환했지만, 장학 사업은 계속 이어졌다.

 

당시 서울에는 대선제분을 비롯해 광성정미소, 대창정미소, 삼평정미소, 오류정미소, 옥천정미소, 평택정미소, 흥양정미소 등 7개의 정부 양곡 가공 공장이 존재했으며, 옥천정미소는 이 가운데 하나로 포함될 정도의 규모와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이는 이 정미소가 단순한 지역 시설이 아니라 수도권 식량 공급 체계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옥천정미소는 일본제국의 식민지 통치 아래에서 허가된 양곡 가공 시설로 출발해, 해방 이후에는 조선인 자본에 의해 계승·확장되고, 이후 지역 사회 기반의 자본과 공공 활동으로 이어진 사례다. 이는 김포·강서 지역이 식민지 농업 개발 → 국가 통제 식량 유통 → 지역 자본 축적 → 사회 환원으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변화해왔음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