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연구

양천양조(陽川釀造)

운영자

2026-04-17

양천양조(陽川釀造)는 1937년 12월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염창리(鹽倉里)를 거점으로 설립된 양조업 회사로, 일제강점기 지역 농업 생산과 연계된 가공 산업의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다. 자본금 2만 5천 원 규모의 합명회사로 출발했으며, 조선주 제조를 주요 사업 목적으로 삼았다. 대표는 박봉양(朴鳳陽)이었고, 사원 역시 김대연(金大演), 김광익(金光益), 김인배(金寅培) 등 조선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일본인 자본이 주도한 대규모 농업 개발 회사들과는 달리 조선인 중심의 지역 자본에 의해 운영된 기업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 회사는 양동면(陽東面) 일대에서 생산된 곡물을 기반으로 주류를 제조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양동면은 국유미간지(國有未墾地) 개간과 농업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지역이었고, 그 결과 생산된 농산물을 활용한 가공 산업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양천양조(陽川釀造)는 이러한 지역 경제 구조 속에서 1차 생산과 2차 가공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한 기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일본인 자본이 주도한 농업 개발이 토지와 생산을 장악했다면, 조선인 자본은 그 생산물을 기반으로 한 양조업과 같은 생활 산업 영역에서 활동하는 방식으로 경제 구조가 분화되어 있었다.
 

또한 양천양조(陽川釀造)는 해방 이후에도 일정 기간 존속한 것으로 확인된다. 1950년대 자료에서도 동일한 상호와 업종으로 등장하며 약주와 탁주를 생산하는 업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지역 산업이 해방 이후에도 단절되지 않고 일정 부분 계승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기업 존속을 넘어, 지역 주민과 생활 경제에 기반한 산업 구조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음을 시사한다.
 

결국 양천양조(陽川釀造)는 김포·양천 지역에서 형성된 식민지 경제 구조 속에서, 조선인 자본이 담당했던 가공 산업의 한 축을 보여주는 사례다. 토지 개간과 농업 생산이 일본인 자본에 의해 주도되었다면, 양조업과 같은 생활 밀착형 산업은 지역 기반의 조선인 자본이 맡는 이중 구조가 존재했으며, 양천양조(陽川釀造)는 그 교차 지점에 위치한 기업이었다. 이는 양동면(陽東面)이 단순한 농촌이 아니라, 생산과 가공, 그리고 서로 다른 주체의 자본이 얽힌 복합적 경제 공간이었음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