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문조서는 장세구라는 개인의 행적을 기록한 문서이면서 동시에, 3·1운동을 둘러싼 식민 권력의 수사 방식과 피의자의 대응 전략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심 기록이다.
문서의 형식부터 보면, 이는 단순 경찰 신문이 아니라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루어진 예심 단계의 공식 조사다. 조선총독부 판사와 서기가 배석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만큼, 이후 기소와 재판을 전제로 한 법적 문서이며, 질문의 구조 역시 “사실 확인”을 넘어 “조직성 입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먼저 인적사항 부분에서 장세구는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 출신의 경성의학전문학교 2학년 학생으로, 고향에서 매달 17원을 송금받아 생활하는 유학생임을 밝힌다. 이는 그가 단순 노동자가 아니라 지방 출신 근대 교육 엘리트 계층에 속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대목은 김포 지역이 단순한 농촌이 아니라, 경성으로 인재를 공급하는 배후지였다는 점을 드러내는 단서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신문은 3월 1일과 3월 5일 시위 참여 여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장세구는 2월 28일 동급생 곽기상의 권유로 탑골공원 집결 사실을 알게 되었고, “독립을 원한다”는 생각에 참여를 결심했다고 명확히 진술한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조서 전체에서 드물게 드러나는 자발적 의사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는 3월 1일 실제로 탑골공원에 가서 선언서 낭독과 전단 배포를 목격하고, 약 3~4천 명 규모의 군중과 함께 종로·대한문·광화문·서대문·프랑스영사관·의주로·태평로 등을 거쳐 도심을 행진하며 만세를 외쳤다고 상세히 진술한다. 이는 단순 가담이 아니라 도심 시위의 전 과정을 직접 체험한 적극적 참여였음을 보여준다.
이어 3월 5일 남대문역 시위 역시 별도의 경로로 정보를 입수해 참여한 사실이 확인된다. 그는 경성일보사 앞에서 만난 선배의 말을 듣고 시위에 나갔으며, “조선독립” 깃발을 앞세운 군중과 함께 남대문 방향으로 행진하며 만세를 외쳤다고 진술한다. 즉 장세구는 3·1운동의 핵심 시위일에 반복적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 진술과는 별개로, 조서 전반에는 명확한 방어 전략이 드러난다. 경찰과 판사는 지속적으로 “누가 계획했는가”, “누가 선동했는가”, “사전에 모의했는가”를 묻지만, 장세구는 이에 대해 일관되게 “모른다”, “들은 적 없다”고 답한다. 선언서를 직접 받았느냐는 질문에도 “보았으나 줍지 않았다”고 선을 긋는다. 이는 자신의 행위를 조직적 범죄가 아닌 현장 참여 수준으로 축소하려는 의도적 진술로 해석된다.
체포 경위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그는 3월 12일 종로에서 체포되었지만, 이를 시위 참여 때문이 아니라 “이발소에 가는 길에 구경하다가 잡혔다”고 설명한다. 실제로는 지속적인 시위 참여 이력이 있음에도, 체포 상황을 우연적 사건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장은 따로 있다. 판사가 “현재도 독립을 원하느냐”고 묻자, 그는 “조선인이기 때문에 독립을 원한다”고 분명히 답한다. 이는 모든 방어 진술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민족 의식의 직접적 표출이다. 다만 이어지는 질문에서 그는 “앞으로 독립운동을 할 생각은 없다”, “현재 상태에 불만 없다”고 말하며 다시 한 번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진술을 정리한다.
결국 이 신문조서는 두 층위로 읽혀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조직성과 계획성을 부인하는 ‘수동적 참여자’의 진술이지만, 그 내부를 보면 자발적 참여 의지, 반복된 시위 가담, 도심 행진 경험, 명확한 독립 의식이 동시에 드러난다. 즉, 장세구는 단순한 군중의 일부가 아니라, 학생 네트워크를 통해 조직적으로 확산된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이며, 동시에 식민지 사법 체계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축소·재구성해야 했던 피의자이기도 하다.
이 문서는 개인의 진술을 넘어, 김포(양동면 가양리) → 경성 유학 → 학생 네트워크 → 시위 참여 → 체포 → 조직성 부인이라는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따라서 장세구의 신문조서는 한 인물의 기록이 아니라, 3·1운동이 어떻게 지역과 도시, 개인과 집단을 연결하며 확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1차 사료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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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世九 訊問調書
問 氏名, 年齡, 身分, 職業, 住所, 本籍地及出生地ハ如何.
答 氏名ハ張世九.
問 位記, 勳章, 從軍記章, 年金, 恩給又ハ公職ヲ有セサルヤ.
答 有シマセヌ.
問 是迄刑罰ニ處セラレタルコトナキヤ.
答 アリマセヌ.
問 何年生乎.
答 2年生テアリマス.
問 學資ハ如何ニシテ得ルヤ.
答 鄕里ノ家ヨリ月17圓宛送金ヲ受ケテ居リマス.
問 宗敎ハ何乎.
答 無宗敎テアリマス.
問 同宿人アリヤ.
答 アリマセヌ.
問 韓偉鍵ヲ知ルヤ.
答 同級生テアリマスカラ知ツテ居リマス.
問 同人ヨリ獨立運動ヲ計劃ヲ聞キタルコトナキヤ.
答 アリマセヌ.
問 其ノ他ノ者ヨリ聞イタ事ナキヤ.
答 2月28日ノ午後3時頃ト思ヒマス. 敎室ヲ出タ廊下テ同級生ノ郭騎商カ誰モ居ヌ處テ私ニ對シ, 明日パコタ公園テ朝鮮人カ獨立ノ宣言ヲスルソ-タカ學生モソレニ參加スルコトニ爲ツテ居ルカラオ前モ來テ吳レト申シマシタ.
問 其ノ時被告ハ何ント答ヘタルヤ.
答 私モ獨立シタイト考ヘテ獨立宣言スルノニ賛成テアリマシタカラ行クト答ヘマシタ.
問 然ラハ其ノ翌3月1日ハトウシタカ.
答 ソレテ私ハ學校ノ學科ヲ了ヘテカラ午後2時頃1人テパコタ公園ニ行キマシタカ, 其ノ時ハ群衆カ澤山集ツテ居リマシテ六角堂ノ上テ何カ判リマセヌカ何カ讀ンテ居ルモノカアリマシタ. 又群衆ノ中テ宣言書ヲ散布シテ居ルモノアリマシタ. ソレテ群衆ハ萬歲ヲ唱ヘマシタカラ私モ和シテ萬歲ヲ唱ヘマシタ. ソレカラ群衆ハパコタ公園ヲ出テ鍾路, 大漢門前, 昌德宮前, 光化門, 西大門ヲ經テ佛蘭西領事館ノ前ニ至リ, ソレヨリ義州通, 太平町, 長谷川町, 朝鮮銀行前ヲ通リテ本町ニ至リ, 日ノ出小學校ノ前ヨリ鍾路通リニ至リ午後5時歸宅シマシタ. 道々群衆ト共ニ萬歲ヲ連唱シツゝ步キ廻リマシタ.
問 其ノ群衆中ニ知リ居リタル者アリタルヤ.
答 知リ居ル者ヲ見受ケマセヌテシタ.
問 其ノ時宣言書ヲ拾ヒタルヤ.
答 散布シマシタカ拾ヒマセヌ.
問 其ノ時ノ群衆ハ何人位ナリシヤ.
答 私ノ見タル處テハ3·4千人位ト思ヒマス.
問 何故ニ萬歲ヲ唱ヘタルヤ.
答 獨立ノ宣言ヲシタ爲ニ嬉シクアリマシタカラ萬歲ヲ唱ヘテ步キマシタ.
問 3月5日南大門驛前ニ行キタルヤ.
答 當日私ハ午前8時半頃家ヲ出テ9時過頃南大門驛前ニ着キマシタ處, 暫クスルト腕車ニ乘リタル2人ノ者カ朝鮮獨立ト書イタ旗ヲ立テゝ來マシタ. ソレテ群衆ト共ニ南大門ノ方ニ向ヒマシタ. 其ノ時私ハ群衆ト共ニ獨立萬歲ト唱ヘツゝ南大門ノ處ニ行キマスト警官カ制止シマシタカラ歸宅シマシタ.
問 其ノ時赤布ヲ貰ヒタルヤ.
答 貰ヒマセヌ.
問 其ノ時ノ群衆ノ數如何.
答 數百名ト思ヒマス.
問 3月5日ニ萬歲ヲ唱ヘタル理由如何.
答 3月1日ニ唱ヘタルト同趣旨テ唱ヘマシタ.
問 右運動アルコトヲ如何ニシテ知レルヤ.
答 3月4日ノ晝頃南大門ノ處ノ親族ヲ訪問スル爲行ク途中, 京城日報社ノ前ヲ通ル際私ノ學校ノ3年生ノ姜ト云フ人カ私ニ對シ, 明5日午前9時南大門驛前ニ集ツテ萬歲ヲ唱フルニヨリ行クヘシト申シマシタカラ, ソレテ右運動ノアルコトヲ知リ行キタルノテアリマス.
問 李橿ヲ知ルヤ.
答 同級生テアルカラ知ツテ居リマス.
問 同人ノ供述ニヨレハ, 2月末頃韓偉鍵ハ2年生ノ者等ニ對シ獨立運動ニ參加ス可シト云ヒ, 尙其ノ後2年生カ敎場ニ居ル際同樣ノコトヲ云ヒ勸メタルトノ事ナルカ, 被告ハソレヲ聞キタルコトナキヤ.
答 私ハ左樣ノコト聞キタルコトアリマセヌ.
問 何時逮捕セラレタルヤ.
答 3月12日鍾路ノ靑年會館ノ附近テ捕ヘラレマシタ.
問 其ノ際鍾路ニ於テ群衆カ騷イテ居ツタノニ參加シタル爲逮捕セラレタルノテハナイカ.
答 其ノ日私ハ鍾路ノ理髮屋ニ行ク途中靑年會館ノ前ノ店テ歐洲戰亂ノ繪ヲ見テ居リマスト, 巡査カ鍾路ノ普信閣ノ方ニ向ツテ走ツテ行キマスノテ何事カト思ヒ見ニ行キマスト, 2·30名ノモノカ騷イテ居リマシタ. ソレヲ私ハ見テ歸ル處ヲ逮捕セラレマシタ.
問 現在テモ朝鮮ノ獨立ヲ希望シ居ルヤ.
答 獨立ヲ希望シテ居リマス.
問 希望スル理由如何.
答 朝鮮人テアルカラ朝鮮ノ獨立ヲ希望シマス.
問 將來モ獨立運動スル意思カ.
答 將來獨立ヲ實行スル意思アリマセヌ.
問 現在ノ狀態ニツキ何カ不平アリヤ.
答 何等不平アリマセ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