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연구

장세구 신문조서(張世九 訊問調書) 1919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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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7

사진 출처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서에서 장세구는 자신을 “경성의학전문학교 2학년 학생”으로 밝히고, 3월 1일과 3월 5일 시위에 참여한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실제 그의 생애 기록을 보면, 그는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시위에 참여해 종로·대한문·을지로 일대까지 행진했고, 이후 남대문역 시위에도 가담해 격문을 배포하다 체포된 인물이다. 즉, 현장 참여 자체는 명백한 사실이며 조서 역시 이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조서에서 드러나는 그의 진술 방식은 분명한 특징을 갖는다. 그는 시위 참여 경위에 대해 “동급생 곽기량의 말을 듣고 따라갔다”, “군중이 많아 함께 움직였다”고 설명하며, 행동의 주체를 자신이 아닌 ‘학생 집단’과 ‘현장 분위기’로 돌린다. 또한 시위의 지휘자, 선언서 낭독자, 조직적 모의 여부 등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알지 못한다”고 답한다. 독립선언서를 본 적도 없고, 사전에 논의에 참여한 적도 없다고 부인한다. 이는 단순한 기억 부족이 아니라, 조직적·계획적 범죄로 규정하려는 경찰의 질문을 차단하기 위한 방어 진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사람들이 조선이 독립되었다고 하기에 기뻐서 만세를 불렀다”, “학생들에게 유혹되어 행동했다”고 말한다. 이 진술은 매우 의도적이다. 자신의 행동을 정치적 신념이나 조직 활동이 아닌 일시적 감정과 집단 동조로 축소함으로써, 법적 책임을 경감하려는 방향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이후 재판에서 징역형에 집행유예가 선고되는데, 이러한 진술 구조는 판결 결과와도 일정 부분 연결된다. 

 

하지만 그의 전체 생애를 보면, 이 조서의 진술만으로 그를 단순한 ‘수동적 참여자’로 볼 수는 없다. 그는 3월 5일 시위에서 격문을 배포했고, 이후 조선학생대회 간부로 활동하며 동맹휴학을 주도하는 등 지속적으로 학생운동과 항일 행동을 이어간 인물이다. 이는 조서에서 드러난 ‘우발적 참여’라는 자기 진술과 실제 행적 사이에 분명한 간극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 신문조서는 두 층위로 읽어야 한다. 하나는 3·1운동 당시 실제 시위의 흐름과 참여 양상을 보여주는 현장 기록이고, 다른 하나는 식민 권력의 법적 틀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행동을 재구성하고 축소하는지를 보여주는 진술 문서다. 이 두 층위를 함께 고려할 때, 장세구는 단순한 군중 참가자가 아니라 학생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적극적 항일운동 참여자로 평가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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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世九 訊問調書
 


問 本籍, 住所, 出生地, 身分, 職業, 氏名, 年齡ハ如何.


答 本籍 京畿道金浦郡楊東面加陽里1統5戶.
住所 京城府御成町50番地, 金元準方.
出生地 京畿道金浦郡楊東面加陽里1統5戶.
兩班.
京城醫學專門學校2年生 張世九
當21年

問 官吏, 公吏, 議員ニハアラサルカ.

答 アリマセヌ.

問 爵位, 勳功, 年金, 從軍記章ヲ有セサルカ.

答 アリマセヌ.

問 是迄刑事處分, 起訴猶豫又ハ訓戒放免ヲ受ケタルコトナキヤ.

答 私ハ刑事處分, 起訴猶豫又ハ訓戒放免ヲ受ケタル事ハアリマセン.

問 其方ノ宗敎ハ如何.

答 宗敎ハアリマセヌ.

問 何處ニテ捕ハラレタルヤ.

答 鍾路2丁目靑年會前道路ニ於テ警察官ニ取リ押ヘラレマシタ.

問 其時間ハ如何.

答 本日午後3時10分頃デアリマス.

問 其方ハ3月1日パコタ公園ニ學生團體ガ集合セル際加擔シテ萬歲ヲ高唱シテ喧噪セル事實ハ如何.

答 3月1日ハ土曜日デ御座リマシテ, 授業放課後午後1時邊頃ニ學生ハパコタ公園內ニ集合スル事ヲ同年生郭祺亮ガ私ニ對シ申シマシタカラパコタ公園內ニ參加シタルニ, 約千名餘集團シテ非常ニ騷キ立テ居リマシタガ, 其學生團ハ萬歲ヲ一齊ニ揚ケテ表門ヨリ鍾路1丁目ニ向テ行進シ萬歲ヲ高唱シテ走リ出シマシタカラ, 私モ之レニ附和隨行シテ朝鮮銀行前ニ出テ本町通リヲ通過スルトキニ憲兵·警察官ニ遮ラレ, 私等ハ100餘名ニナリマシテ是ヨリ若草町ヲ經テ鍾路3丁目ニ出テ私ハ其團體ヲ脫シテ下宿屋ニ歸リマシタ.
最初ハ1000名餘ノ團體デ御座リマシタ. 愈々人員ハ幾分ニモ分レマシタカラ減少致シマシタ.

問 其時ノ指揮統率者ハ誰レナルヤ.

答 ソレハ判リマセヌ.

問 パコタ公園ニ於テ宣言書ヲ朗讀シタル者ハ誰レナルヤ.

答 ソレハ澤山ノ人デ御座リマシテ宣言書ヲ讀ンタカ私ハ判リマセヌ.

問 3月2日鍾路電車十字路ノ大廣場ニ於テ萬歲ヲ連呼セルトキハ如何.

答 私ハ日曜日デ御座リマシテ下宿屋ニ休ンデ外出ハ致シマセヌ.

問 3月5日ハ南大門驛前學生集合團體ニ加擔シ萬歲ヲ連唱セリト云フカ事實ハ如何.

答 3月4日京城府黃金町1丁目道路ニ於テ郭祺亮ガ明5日午前9時頃ニ南大門驛前大廣場ニ於テ學生ハ集團シテ萬歲ヲ高唱スル話ヲ聞キマシタカラ, 私ハ其時刻ニ南大門驛前ニ多數ノ各學生等ガ集合シテ南大門內ニ萬歲ヲ連唱シテ來マス其ノ團體ニ交リ萬歲萬歲ト連唱セル時分ニ憲兵·警察官ニ阻止セラレ, 集團セル學生ハ四散逃走致シマシタカラ私モ其場ヲ逃ケ出シテ下宿屋ニ歸リマシタ.

問 學校ニ於テ朝鮮民族代表者ヨリ宣言書配付ヲ受ケタル爲メ喧噪シタルデハナキヤ.

答 私ハ獨立宣言書ヲ學校又ハ其他ニ於テ見タル事ハアリマセヌ.

問 其方ハ獨立宣言ニ付密議會合シタル事實ハ如何.

答 私ハ密議會合シタル事アル事ト思ハレマスガ私ハ更ニ判リマセヌ.

問 學校ニ於テ煽動者ハ誰レナルヤ.

答 ソレハ判リマセヌ.

問 本日午後2時頃京城府鍾路普信閣前ニ於テ萬歲ヲ高唱シ喧噪シタルトキニ參加セザルヤ.

答 私ハ本日午後2時20分頃理髮ヲナス積リデ下宿屋ヲ出發シテ鍾路2丁目靑年會前ニ聖書ヲ賣ッテ居ル店頭ニ居リマシテ, 萬歲ヲ高唱シテ騷ヒタルヤ判リマセヌ.

問 其方ハ朝鮮ガ獨立シタリト思フヤ.

答 一般ガ朝鮮ガ獨立シタリト言ヒマスカラ私モ獨立シタリト見テ喜ンデ萬歲ヲ唱ヘマシタガ實際ノ事ハ判リマセヌ.

問 李太王殿下國葬儀前後ハ殊ニ朝鮮民族ハ哀悼ノ意ヲ表スベキニ朝鮮獨立ヲ唱ヘ萬歲ヲ叫ビ騷擾スル意思ハ如何.

答 實際今日ニ至リテハ私モ考ヘナク學生等ニ誘惑ヲ受ケテ萬歲ヲ唱ヒ騷キ立テタルハ誠ニ惡フ御座リマシタ.

問 利益ナル申立テハナキヤ.

答 アリマセヌ.
右讀聞セタルニ相違ナキ旨申立テ共ニ署名ノ上捺印シタリ.
被告人 張世九
大正8年3月12日
於京城鍾路警察署
司法事務取扱 朝鮮總督府巡査 櫻島矩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