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연구

독립운동 관련 상황 보고 제25호 (獨立運動ニ關スル件(第二十五報))

운영자

2026-04-17

출처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919년 3월 24일자 「獨立運動ニ關スル件(第二十五報)」는 3·1운동이 서울 도성과 그 주변뿐 아니라 김포 일대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일제 측 비밀 보고다. 이 문서에 따르면 경기도 김포군에서는 3월 23일 양촌면 양곡리에 약 2천 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경찰관주재소와 면사무소로 몰려갔다. 일제 당국은 주동자 60명을 체포해 일단 해산시켰으나, 군중은 체포된 이들을 탈환하기 위해 다시 집결해 저항하였고, 결국 경찰은 공포를 발사하며 다음 날 오전 7시에 이르러서야 강제로 해산시켰다고 기록했다. 같은 날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에서도 약 150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이 역시 즉각 해산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 강서구와 인접한 옛 김포 지역이 3·1운동의 주변부가 아니라 실제 군중 시위와 집단 저항이 전개된 공간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양곡리에서는 단순한 만세 시위에 그치지 않고, 면사무소와 주재소로 향하는 집단 행동, 체포자 탈환 시도, 경찰의 공포 발사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당시 민중의 저항 강도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가양리 역시 비교적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만세 시위가 확인되므로, 김포군 양동면·양촌면 일대가 1919년 봄 독립운동의 실제 현장이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볼 수 있다.

 

즉 이 문서는 김포·강서 인근 지역의 3·1운동을 입증하는 1차 사료로서 의미가 크다. 특히 양동면 가양리는 현재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역사와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고, 양곡리 사건은 김포 지역 민중이 집단적으로 항일 시위에 나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만 이 문서는 총독부가 작성한 탄압 보고서이므로, 시위 참가자를 ‘폭민’으로 규정하고 진압 논리를 정당화하는 식민 권력의 시각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점은 함께 감안해야 한다.

 

 

문서철명 不逞團關係雜件 朝鮮人ノ部 在內地 三 

문서번호 高第8468號;秘受03594號 

문서제목 獨立運動ニ關スル件(第二十五報) 

발신자 

수신자 

발신일 1919년 03월 24일 

수신일 1919년 03월 28일

 

 

極秘
要目付了
主管 政務局印
第一課印
大正8年3月28日接受
大正8年3月24日
高第8468號
秘受03594號
獨立運動ニ關スル件(第二十五報)
 
一, 京城(三月二十四日午前十時迄ノ情況)
二十三日午後八時ヨリ五十名乃至五百名ノ群衆ハ訓練院附近, 東大門內外, 東小門內, 彌生町, 元町ノ各處ニ於テ獨立萬歲ヲ高唱シタルカ翌二十四日午前零時三十分全ク鎭靜ニ歸セリ
京城市外  二十三日午後八時ヨリ高陽郡東廟里(以下凡テ高陽郡)敦巖里, 淸凉里, 往十里, 麻浦, 楊花津, 水色, 綠磻峴, 東幕, 唐津里, 幸州, 滄川里及舊把撥里ノ各處ニ於テ五十名乃至一千名ノ群衆獨立萬歲ヲ高唱シタルカ何レモ翌二十四日午前零時鎭定セリ而シテ東大門內外淸凉里及東廟里附近ノ群衆進行中ノ電車ニ投石シ電車二十臺ノ窓硝子百五枚ヲ破壞セリ
高陽郡合井里  二十三日延禧面合井里ニ約三十名ノ暴民集合シ支那人居住ノ家屋二, 三戶ヲ破壞セシヲ以テ楊花津憲兵駐在所ニ於テ首謀者三名ヲ逮捕セリ
二, 地方(三月二十四日午前十時迄ノ情況)
(一), 京畿道
漣川郡百鶴面  (旣報第二十四報)二十二日面事務所ヲ破壞シタル暴民ニ對シ發砲シタル結果暴民ニ死者一負傷者若干ヲ出シタリ
金浦郡陽谷里  二十三日陽村面陽谷里ニ約二千ノ群衆運動ヲ開始シ警察官駐在所及面事務所ニ押寄セタルヲ以テ首謀者六十名ヲ逮捕シ解散セシメタリ然ルニ暴民ハ留置中ノ被告人奪還ノ目的ヲ以テ再ヒ來襲シ暴行セシニヨリ空砲ヲ發射シ翌二十四日午前七時解散セシメタリ
金浦郡加陽里  二十三日陽東面加陽里ニ於テ約百五十名ノ群衆獨立萬歲ヲ高唱セシモ直ニ解散セシメタリ
始興郡鷺梁津  二十三日鷺梁津ニ於テ約三百名ノ群衆獨立萬歲ヲ高唱セシモ直ニ解散セシメタリ
同舊永登浦  二十三日永登浦ニ於テ約三百名ノ群衆獨立萬歲ヲ高唱セシヲ以テ首謀者五名ヲ逮捕シ直ニ解散セシメタリ
同洞山里  二十三日約百五十名ノ群衆獨立萬歲ヲ高唱セシニヨリ首謀者四名ヲ逮捕シ解散セシメタリ
同楊坪里  二十三日約二百名ノ群衆楊坪里ニ於テ運動ヲ開始セシニヨリ首謀者五名ヲ逮捕シ解散セシメタルカ其ノ際巡査補一名暴民ノ爲ニ毆打セラレ人事不省トナリタルモ蘇生セリ
同楊津里  約三百名ノ群衆運動ヲ開始セシヲ以テ首謀者二名ヲ逮捕シ解散セシメタリ
江華郡喬洞  二十一日喬洞警察官駐在所前ニ於テ約八十名ノ群衆運動ヲ開始セシニ依リ直ニ解散セシメタリ二十二日約百名ノ群衆前日同樣運動ヲ開始セシニ依リ極力制止シ三時間ノ後解散セシメタルモ尙運動增大ノ兆アルヲ以テ應援ノ爲軍隊出動セリ兩日ノ運動ニ依リ首謀者三十五名ヲ逮捕シタリ
(二), 全羅北道
任實郡獒樹  二十三日獒樹警察官駐在所及面事務所ハ暴民ノ爲破壞セラレタルヲ以テ南原憲兵分隊ヨリ應援ノ爲メ憲兵ヲ急派セリ
(三), 慶尙北道
安東郡禮安  二十二日暴民約二千名ハ禮安警察官駐在所ヲ襲ヒ暴行セシニ依リ止ムナク發砲シ解散セシメタルカ暴民側ニ死傷者數名アル見込
尙州郡尙州  二十三日尙州市場ニ於テ約八十名ノ群衆運動ヲ開始セシヲ以テ首謀者五名ヲ逮捕シ解散セシメタリ
安東郡安東  二十三日夕刻安東邑附近ノ各處ニ於テ小團ノ群衆運動ヲ開始シ漸次其數ヲ增加シ午後九時ニハ約二千名トナリ邑內ニ押寄セ暴行ヲ爲シ如何ニ解散ヲ命スルモ應セサルヲ以テ止ムナク發砲シ解散セシメタルカ暴民ニ死者六, 重傷者三名及其他若干ノ負傷者アル見込尙首謀者三名ヲ逮捕セリ
(四), 慶尙南道
陜川郡三嘉及栢山  二十三日栢山面ニ約三千ノ暴民舊韓國旗ヲ押立テ面事務所ニ放火シ其ヨリ約一里ヲ距フル三嘉ニ押寄スル途中電柱二本ヲ倒シ通信ヲ絶チテ三嘉市場ニ至リタルカ暴民ハ益益其數ヲ增加シ約一萬ニ達シ棍棒, 鎌等ヲ打振リ三嘉警察官駐在所及郵便所ヲ襲擊シ暴行ヲ敢テセシニ依リ警戒中ノ巡査ハ止ムナク發砲シ首謀者五名ヲ逮捕シ解散セシメタルカ暴民ニ死者五ヲ出シ負傷者二十名アル見込
(五), 黃海道
延白郡碧瀾渡  二十三日碧瀾渡ニ於テ耶蘇敎學校生徒及住民約百名運動ヲ開始セシヲ以テ龍峴憲兵駐在所ニ於テ首謀者二名ヲ逮捕シ解散セシメタリ
遂安郡延岩面栗里在籍ノ金愛思二十一年ハ京城貞洞梨花學堂(耶蘇敎經營學校)ニ在學中米國人女宣敎師某ノ命ニ依リ同校在學中ノ生徒二十名ヲ率ヒ三月三日平壤ニ至リ獨立運動ヲ爲シ檢擧セラルルニ至リタルコトヲ聞知シタル金ノ祖父ハ大ニ怒リ運動ヲ敎唆セル宣敎師ヲ對手トシ訟訴ヲ提起スヘシト稱シ居レリト云フ
(六), 平安南道
安州郡立石  二十三日立石ニ於テ耶蘇敎徒ヲ中心トスル約二千名ノ群衆運動ヲ開始セシヲ以テ憲兵警察官ハ安州ヨリ來援ノ軍隊ト協力シ解散セシメタリ
(七), 江原道
華川郡華川  二十三日天道敎徒ヲ中心トスル約六十名ノ群衆華川市場ニ押寄セタルモ首謀者三名ヲ逮捕シ解散セシメタリ
發送先
總督, 政務總監, 各部長官, 總務局長, 京城地方法院檢事正,
陸軍大臣, 參謀總長, 軍司令官, 師團長, 憲兵司令官,
內務次官, 外務次官, 內閣書記官長, 拓殖局長官, 警視總監,
關東都督, 關東警務總長, 各道部長, (間島浦汐派遣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