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24일자 「獨立運動ニ關スル件(第二十五報)」는 3·1운동이 서울 도성과 그 주변뿐 아니라 김포 일대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일제 측 비밀 보고다. 이 문서에 따르면 경기도 김포군에서는 3월 23일 양촌면 양곡리에 약 2천 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경찰관주재소와 면사무소로 몰려갔다. 일제 당국은 주동자 60명을 체포해 일단 해산시켰으나, 군중은 체포된 이들을 탈환하기 위해 다시 집결해 저항하였고, 결국 경찰은 공포를 발사하며 다음 날 오전 7시에 이르러서야 강제로 해산시켰다고 기록했다. 같은 날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에서도 약 150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이 역시 즉각 해산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 강서구와 인접한 옛 김포 지역이 3·1운동의 주변부가 아니라 실제 군중 시위와 집단 저항이 전개된 공간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양곡리에서는 단순한 만세 시위에 그치지 않고, 면사무소와 주재소로 향하는 집단 행동, 체포자 탈환 시도, 경찰의 공포 발사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당시 민중의 저항 강도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가양리 역시 비교적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만세 시위가 확인되므로, 김포군 양동면·양촌면 일대가 1919년 봄 독립운동의 실제 현장이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볼 수 있다.
즉 이 문서는 김포·강서 인근 지역의 3·1운동을 입증하는 1차 사료로서 의미가 크다. 특히 양동면 가양리는 현재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역사와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고, 양곡리 사건은 김포 지역 민중이 집단적으로 항일 시위에 나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만 이 문서는 총독부가 작성한 탄압 보고서이므로, 시위 참가자를 ‘폭민’으로 규정하고 진압 논리를 정당화하는 식민 권력의 시각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점은 함께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