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규(崔秉奎)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외발산리를 기반으로 활동한 인물로, 약 1915년부터 1939년까지 양서면장을 장기간 역임한 지역 행정 책임자이자 식민지 말단 통치 구조의 핵심 인물이다. 조선총독부 직원록에 따르면 그는 1919년부터 1939년까지 지속적으로 동일 직위에 재직한 사실이 확인되며, 1915년 임명 기록까지 고려할 경우 최소 20년 이상, 길게는 25년에 이르는 장기 재임을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장기 재임은 단순한 행정 경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당시 면장은 조세 징수, 호구 관리, 치안 협조, 토지 행정 등 식민 통치의 기초 단위를 직접 수행하는 자리였으며, 중앙 권력이 지역을 통제하는 데 있어 가장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위치였다. 최병규는 이 직위를 장기간 유지함으로써 양서면 일대의 행정과 지역 질서를 사실상 지속적으로 관리한 인물이었다.
그의 활동은 행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1923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양천수리조합(陽川水利組合) 조합장으로 임명되면서, 한강 하류 저지대의 치수 사업과 농업 기반 정비에도 깊이 관여했다. 양천수리조합은 제방 축조와 배수 시설 구축을 통해 반복되는 홍수 피해를 통제하기 위한 조직이었지만, 동시에 조합비 부담과 공사 방식, 배수 문제로 인해 농민과 소작인의 불만이 집중되는 구조였다. 최병규는 이 조합의 초대 조합장으로서 사업을 주도하는 한편, 이러한 갈등이 표면화되는 현장에서도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었다.
1939년 이후에는 창씨개명 정책에 따라 慶山秉奎(경산 병규)라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식민지 후반기 조선인 지방 엘리트가 제국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의 전형적인 사례로, 그의 행정적 위치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같은 시기 그는 양서면 내 신명신사(神明神祠) 설립 허가를 받은 인물로도 확인되는데, 이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일본 제국의 신사 체계를 지역에 확장하는 정책 수행의 일환이었다.
결국 최병규는 지역 기반을 가진 토착 인물이 식민 행정 체계에 편입되어 장기간 권력을 유지한 사례이며, 동시에 수리조합 운영과 신사 설립 등을 통해 식민지 정책을 지역 사회에 실행한 인물이었다. 그의 이력은 한강 하류 김포·강서 지역이 식민지 통치 구조 속에서 어떻게 재편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사례로, 행정 권력과 지역 사회, 그리고 제국 정책이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최병규는 양서면장과 양천수리조합장을 겸임하며 장기간 지역을 통치하고 식민지 정책을 현장에서 실행한 김포 양서면의 핵심 행정 권력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