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김포군(현 서울 강서구 가양동) 양서면 가양리(加陽里 231번지) 출신 장세구(張世九, 1898.4.16~1931.1.26)는 1919년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 2학년에 재학 중 3월 1일 탑골공원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에 곽기량 등 동교생과 함께 3,000~4,000명 시위대와 행진하며 종로·대한문·프랑스영사관·의주로·태평로·소공동·을지로 등을 거쳐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3월 5일 남대문역 광장에서 강기덕·김원벽 등과 행진하다 붉은 완장 차고 격문 배포 중 피체되어 3월 12일 종로 2가 청년회관 앞 체포, 8월 30일 예심 종결 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김봉렬·오충달·한종건 등과 출판법·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미결구류 90일 산입) 집행유예 3년 선고받았으며, 1921년 4월 16일 조선학생대회 덕육부장 선임 후 6월 7일 이필근·양봉근 등과 구보(久保武) 교수 민족차별 망언 규탄 동맹휴교 주도하다 8일 동대문경찰서 조사 후 신진우 등 7명과 퇴학당하고 김포 귀향 생활 중 1931년 1월 26일 사망하여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받았다.
인물
장세구(張世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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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