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화영(李華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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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

치안유지법위반 판결문
출처 - 국가기록원

 

이화영(李華永, 1903~?)은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목동리 출신으로, 1930년대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가다. 그는 양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기독교청년회학교 영어과를 수료하였으며, 재학 시기부터 좌익 문헌과 마르크스주의 이론서를 탐독하며 공산주의 사상에 깊이 경도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기반은 이후 그의 조직 활동 전반을 이끄는 출발점이 되었다.

 

1930년 그는 이종림, 신인택 등과 함께 서울 영등포를 중심으로 ‘오르그 그룹’을 조직하여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한 기초 조직 구축에 참여하였다. 이 조직은 정기적인 회합을 통해 사상 교육과 전략을 공유하고 자금을 조달하며 조직 기반을 확장해 나갔다. 이화영은 이 과정에서 재정과 농촌 부문을 담당하는 핵심 인물로 활동하였으며, 수차례에 걸쳐 약 150원 이상의 자금을 제공하고 추가로 150원을 별도로 지원하는 등 조직 운영의 실질적인 재정 기반을 담당하였다. 동시에 그는 조직의 출판·선전 활동을 주도하며 자신의 집에 등사기를 은닉하고 3·1절 기념 전단, 메이데이 전단, 노동조합 및 농민운동 관련 리플렛과 소책자 등 700부 이상에 달하는 인쇄물을 제작·배포하였다. 이는 단순 참여 수준을 넘어 조직의 실행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실무자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활동은 김포 지역으로도 확장되었다. 그는 양동식산회사 소작인회 조직에 관여하며 농민 조직화를 시도했고, 양서면 방화리에서는 전조선농민사 지부를 내부에서 장악해 좌익 조직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을 실행하였다. 비록 이러한 시도는 경찰의 개입과 지역적 조건으로 인해 지속되지 못하고 해체되었으나, 농촌을 기반으로 한 조직 확장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1931년 사건 일부가 발각되자 그는 이종림 등과 함께 소련으로 도피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토지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해 탈출 비용을 마련하는 등 조직 유지와 이동 과정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소련에서는 체포와 조사를 거친 뒤 노동자로 근무하다가 모스크바로 이동해 동방근로자공산대학에 입학하였고, 예과와 속성과정을 거쳐 1934년 졸업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레닌주의, 노동운동, 조직론 등 공산주의 운동의 이론과 실천을 체계적으로 습득하였다.

 

이후 그는 조선으로 재파견되어 평양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 재건과 적색노동조합 조직을 추진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1934년 말 조선에 잠입한 그는 노동자로 위장 취업하며 조직 기반을 구축하려 했으나, 지속적인 감시와 건강 악화로 인해 활동은 제한적이었다. 이후 서울에서 치료를 받은 뒤 지방으로 이동하던 중 1937년 3월 고향 김포로 돌아왔다가 4월 1일 김포경찰서에 체포되었으며, 종로경찰서로 이송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어 1937년 6월 12일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사건이 송치되었다.

 

같은 해 6월 18일 경기도 경찰부장이 작성한 보고 문서는 이 사건을 전국 경찰 조직에 통보하는 형태로 확산시켰다. 이 문서에는 이화영을 비롯해 이종림, 양명, 최성우 등 국제 공산주의 네트워크 인물들이 함께 명시되며, 각 도 경찰부와 경찰서에 미검거자 색출 및 해외 유입 인물 통제를 강화할 것이 지시되었다. 이는 이화영 사건이 단순한 개인 검거 사건이 아니라 조선공산당 재건 조직, 해외 공산주의 교육 네트워크, 국내 잠입 및 조직 재건 활동이 결합된 전국 단위의 중대한 사건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이화영의 행적은 국내 조직 결성, 선전 및 자금 운영, 사건 발각과 해외 도피, 공산대학 교육, 국내 재잠입과 조직 재건 시도, 그리고 검거와 기소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1930년대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의 전형적인 구조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그의 활동 기반이었던 김포군 양동면과 양서면 일대는 단순한 농촌 공간을 넘어 조직 결성과 은신, 재결집이 이루어진 거점으로 기능하였다.

 

결국 이화영은 지역 단위의 인물을 넘어 국제 공산주의 네트워크와 연결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의 실행 인력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조직·자금·선전·국제연계를 모두 수행한 실행형 항일운동가로 자리매김한다. 다만 해방 이후 행적과 사망 시점은 현재 자료만으로 확인되지 않아 추가적인 사료 검증이 필요한 상태다.


근거 및 출처
共産大學卒業生檢擧ニ關スル件 
발신일 | 1937년 05월 20일 생산/발신자 | 京畿道警察部長 문서번호 | 京高特秘 제1273호; 地檢秘 제571호


秘密結社朝鮮共産黨共産主義者協議會事件起訴中止者檢擧ニ關スル件
발신일 | 1937년 05월 19일 생산/발신자 | 京城鍾路警察署長 문서번호 | 京鍾警高秘 제6913호; 地檢秘 제546호


共産大學卒業生檢擧ニ關スル件
발신일 | 1937년 06월 18일 생산/발신자 | 京畿道警察部長 문서번호 | 京高特秘 제1273호의 1; 地檢秘 제696호

共産大學卒業生檢擧ニ關スル件
발신일 | 1937년 06월 18일 생산/발신자 | 京畿道警察部長 문서번호 | 京高特秘 제1273호의 1; 地檢秘 제737호

一○、昭和九年度以降ニ於ケル重要事件檢擧 
昭和十年三月 治安情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