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김득남(金得男)

운영자

2026-04-16

김득남(金得男, 1601~1637, 본관 광산(光山), 자 선술(先述), 호 매죽헌(梅竹軒))은 조선 중기 인조 대에 활동한 무신으로, 병자호란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인물이다. 그는 광산김씨 가문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한 뒤 군직에 나아갔으며,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 등 격변기 속에서 군공을 세워 관직에 올랐다. 특히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서해 방어의 핵심 거점인 철곶진 첨사로 임명되어 강화도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며 청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데 앞장섰다. 이후 적이 물러난 뒤에도 소규모 병력을 이끌고 굴포 일대까지 추격전을 벌여 적을 격파하고 포로로 잡힌 백성을 구출하는 등 적극적인 전투를 이어갔으나, 이 과정에서 적의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

그의 전공은 단순한 국지전의 성과를 넘어,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지역 방어와 민간 구출을 동시에 수행한 사례로 평가된다. 실제로 관련 고문서에서도 그는 인조반정과 전란기에 공을 세운 인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사후에는 충절을 기리기 위한 제향이 이어졌다.

그러나 서울 강서구와의 관계는 엄밀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강서구청 문화관광 사이트에서는 그를 강서 인물로 소개하고 있으나, 현재 확인되는 사료에서는 김득남의 출생지와 세거지가 전라남도 무안 지역 광산김씨 집성촌으로 명확히 나타난다. 또한 그를 기리는 사우인 모충사 역시 전남 무안에 위치해 있으며, 지역 기반 역시 호남권에 형성되어 있다.

강서와의 연결은 그의 전투 행적에서 간접적으로 형성된다. 그는 병자호란 당시 철곶진, 굴포 등 한강 하류와 강화도로 이어지는 군사 요충지에서 활동했는데, 이 지역은 오늘날의 강서·양천·부평 일대와 겹치는 공간이다. 즉 김득남은 강서에서 태어나거나 거주한 인물이 아니라, 전란기 군사 작전을 통해 이 지역을 통과하며 싸운 인물이다.

결국 김득남은 조선 중기 전란 속에서 활약한 무신이자,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광산김씨 계통 인물이며, 강서 지역과는 출생이나 세거가 아니라 전투 공간을 통해 연결되는 인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이는 강서 지역 인물 서술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유형, 즉 특정 인물이 지역을 ‘삶의 터전’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무대’로 통과하면서 형성되는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