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허굉(許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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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

허굉(許硡, 1471~1529, 본관 양천(陽川), 자 굉지(宏之), 호 징와(澄窩))은 조선 전기 연산군·중종 대를 거친 문신으로, 중앙 언관직과 지방 관찰사를 두루 역임하며 정치와 군사 양면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좌의정 허침의 아들로, 명문 양천 허씨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학문적 기반을 갖추었으며, 1503년 문과에 급제한 뒤 검열·지평·이조정랑·직제학 등을 거쳐 관직 경력을 쌓았다. 이후 동부승지, 대사간, 대사헌 등 언관직을 맡으며 정치 비판과 공론 형성에 참여했고, 전라도·평안도·함경도 등 여러 지역의 관찰사를 역임하며 지방 행정과 군사 방어를 담당했다.

특히 1524년 함경도관찰사로 재직하던 시기, 조윤손이 여연·무창 지역의 야인을 정벌할 때 이를 지원해 큰 공을 세웠으며, 이 공으로 예조판서에 올랐다. 이후 우찬성으로 승진하고, 서북 변방에 야인의 침입이 잦아지자 순변사로 파견되어 이를 평정하는 등 조선 전기 국경 방어 체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행적은 그가 단순한 문신이 아니라, 군사·행정 능력을 겸비한 실무형 관료였음을 보여준다.

강서 지역과의 관계는 그의 본관과 가문 기반에서 확인된다. 허굉은 양천 허씨로, 이 본관은 고려 이후 공암(孔巖), 즉 현재 서울 강서·양천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적 기반을 의미한다. 실제로 양천 허씨는 이 지역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오랜 기간 세거해 온 대표적 가문이며, 허종·허침 등과 함께 허굉 역시 이 계통에 속한다.

다만 현재까지 확인되는 공신력 있는 사료에서는 허굉 개인의 출생지나 거주지가 오늘날의 강서구 내부였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강서 지역 내에 그의 묘역이나 활동 공간이 존재했다는 명확한 근거도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허굉을 강서 인물로 규정할 때에는, 그가 이 지역에서 활동했다기보다 양천이라는 본관과 가문적 기반을 통해 연결되는 인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허굉은 조선 전기 중앙 정치와 북방 방어 체계 속에서 활약한 문신이자, 양천 허씨 가문의 핵심 인물로서 강서 지역과 이어지는 존재다. 그는 강서의 생활 공간 속 인물이라기보다, 강서를 본관으로 공유하는 역사적 계보 속 인물이며, 이러한 성격은 강서 지역 인물 서술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유형, 즉 혈연과 본관을 통해 지역과 연결되는 사례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