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겸재 정선 그림
이덕영(李德英, 1566~1654, 본관 한산(韓山), 호 죽천(竹泉))은 조선 중기 광해군과 인조 대를 거치며 중앙과 지방을 오간 문신으로, 응교·승지·대사간·부제학·이조참의·병조참판·도승지·전라감사·황해감사·한성부판윤 등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인조반정 과정에서 공을 인정받았으며, 반정 이후에는 광해군을 죽이지 말 것을 주장하는 등 정치적 판단에서도 일정한 원칙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이괄의 난 당시 한성부판윤으로서 공을 세웠고, 사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서울시 강서구와의 관계는 이덕영의 출생지나 세거지에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염창동 일대에 존재했던 정자 ‘이수정(二水亭)’을 통해 형성된다. 강서구청 문화관광 사이트는 그가 한강변 염창동에 이수정을 지은 인물로 소개하고 있으며, 이 정자는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수정은 현재 남아 있지는 않지만, 기록과 회화를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되는 공간으로, 이덕영이 강서 지역과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다만 이러한 연결은 성격을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확인되는 자료에서는 이덕영의 출생지나 세거지가 양천현, 즉 오늘날의 강서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으며,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관직을 맡았다는 근거도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그를 강서 출신 인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대신 이덕영은 강서 지역에 실존했던 공간을 통해 흔적이 남아 있는 인물, 다시 말해 유적을 매개로 지역과 연결되는 인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결국 이덕영은 조선 중기 정치와 전란기를 거친 중앙 관료로서의 성격이 본질이며, 강서와의 관계는 염창동 이수정이라는 장소를 통해 후대에 형성된 것이다. 이는 지역사에서 인물이 반드시 출생이나 세거를 통해서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공간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기억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