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류상운(柳尙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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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

류상운초상 (柳尙運肖像)
사진 출처 - 경기문화재연구원


류상운(柳尙運, 1636~1707, 본관 문화(文化), 자 유구(悠久), 호 약재·누실(約齋·陋室), 시호 충간(忠簡))은 조선 후기 숙종 대의 대표적인 대신으로, 평안도관찰사, 호조판서, 이조판서, 형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지낸 고위 문신이다. 그는 1660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정원주서로 관직에 나아간 뒤 지평, 홍문관교리, 대사간 등을 거치며 중앙 정치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1680년 경신대출척 때에는 복선군을 탄핵해 정국을 노론 쪽에 유리하게 이끈 바 있으나, 이후 서인이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질 때에는 윤증·박세채 등과 가까워지며 소론의 영수로 자리 잡았다. 그는 김석주가 권세를 전횡하려 하자 이를 강하게 비판했고, 1685년에는 호조판서와 이조판서를 거쳐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뒤이어 우참찬,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696년 영의정에 올랐으며, 1701년 장희빈 관련 사건에서 세자의 생모에게까지 연좌가 미치는 것을 막으려다 노론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고, 충청도 직산에 부처되었다가 1704년 석방되어 복귀했다. 그는 글과 글씨에도 능해 여러 금석문을 남겼으며,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강서구청 사이트 관광 - 인물 란에 “양천구 신정동에서 자랐음”이라는 부분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실록 계열 자료에서는 직접 확인되지 않았다. 즉 유상운의 출생·세거·묘소가 양천현 또는 오늘날의 서울 강서·양천 지역과 직접 연결된다는 공신력 있는 근거는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서울시 강서구와의 관계를 따져 보면, 현재 단계에서는 직접적 연고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그가 평안도관찰사 등 여러 지방관을 지낸 사실은 분명하지만, 양천현령·부사 등 양천현을 직접 관할한 경력은 확인되지 않고, 강서 지역 세거지나 묘역 관련 기록도 이번 확인 범위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류상운을 강서 인물로 분류하려면 별도의 향토사 자료, 족보, 묘지명, 지방지 같은 추가 근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확인된 공신력 있는 자료만 놓고 보면, 그는 강서 지역 인물이라기보다 조선 후기 중앙 정계와 소론 정치의 핵심 인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