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김준룡(金俊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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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

김준룡장군 전승지 및 비 (金俊龍將軍 戰勝地 및 碑)
경기 수원시 장안구 하광교동 산1-1번지
사진 출처 - 국가유산포털


김준룡(金俊龍, 1556~1642, 본관 원주)은 병자호란기 조선의 대표적 무신 가운데 한 사람으로, 특히 광교산 전투에서의 승전으로 이름이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는 무과를 통해 관직에 진출한 뒤 여러 군직을 거쳐 전라도 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병마절도사는 해당 도의 군사권을 총괄하는 최고 지휘관으로, 지역 방어와 병력 운용을 책임지는 핵심 직책이었다. 김준룡은 이 직위에 있을 때 병자호란(1636)이 발발하자 호남 병력을 이끌고 북상하여 근왕군으로 합류했고,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를 구원하기 위한 작전에 참여했다.

그의 이름이 역사적으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광교산 전투다. 그는 광교산에 이르러 청군과 맞서 격전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청 태종 홍타이지의 사위로 알려진 장수 양고리(백양고라) 등 적장 3명을 사살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는 조선군이 연전연패하던 병자호란 초기 상황 속에서 드물게 기록되는 승전 사례로, 조선 측 사기 유지와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보여 준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 공적은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기념되었다. 정조 대에 이르러 그의 전공이 재조명되면서 시호 ‘충양(忠襄)’이 내려졌고, 수원 화성 축성과 관련된 인물 채제공이 광교산 암벽에 “충양공김준룡전승지”라는 글을 새겨 그의 승전을 기록하게 했다. 이 전승지는 현재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호남 병력을 이끌고 와 이곳에서 청나라 세 장수를 죽였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최근에는 그의 역사적 실체를 뒷받침하는 유물도 확인되고 있다. 묘 이장 과정에서 출토된 철화백자 묘지석과 『병자년기』 등의 자료가 후손에 의해 수원시에 기증되었는데, 이 묘지석은 그의 아들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김준룡의 생애와 전공을 구체적으로 전하는 1차 사료적 성격을 지닌다.

한편 김준룡은 강서구 지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인물로 기억된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능곡 일대에 묘와 신도비가 있었는데, 1972년 도시개발로 인해 경기도 시흥시 논곡동 177-1로 이장하여 시흥시 향토유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이는 원주김씨 문중의 지역 정착과도 연결된다. 

김준룡은 조선 후기 군사사에서 “전세를 바꾼 장수”라기보다, 패전 속에서도 국지적 승리를 만들어낸 지휘관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의 광교산 전투는 전쟁 전체의 흐름을 뒤집지는 못했지만, 조선군이 완전히 무력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 상징적 사건이었고, 이러한 점에서 그는 병자호란기의 군사사와 기억 속에서 지속적으로 호출되는 인물로 자리 잡는다.

조선의 무신은 기록보다 전승과 기념을 통해 더 강하게 살아남는 경우가 많다. 김준룡 역시 묘지석, 전승비, 지역 기억을 통해 복원되는 인물이며, 이 점에서 그는 단순한 전투 영웅을 넘어 “기록과 기억이 결합된 무신”으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