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김말손(金末孫)

운영자

2026-04-16

겸재 정선 그림 <금성평사>
강 건너 서쪽 건물이 김말손이 세운 영벽정(映碧亭)이다.


김말손(金末孫, 생몰년 미상, 본관 원주)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전해지나, 현재 확인 가능한 정사(正史) 자료에서는 행적이 매우 제한적으로 나타나는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중종 대 무과에 급제해 충청도병마절도사를 지낸 장수로 전승되며, 특히 강서구 염창동 일대에서는 ‘귀신바위 설화’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인물의 성격은 분명히 두 층위로 나뉜다. 하나는 실제 관직을 지낸 무신으로서의 역사적 인물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 설화 속에서 영웅화된 상징적 존재다.

먼저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김말손은 충청도병마절도사라는 직책을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병마절도사는 해당 도의 군사권을 총괄하는 최고 지휘관으로, 국방과 지방 치안을 동시에 담당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이 직위에 올랐다는 전승 자체는 그가 일정한 무과 경력과 군사적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임을 시사한다. 다만 현재까지 확인되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주요 관찬 사서에서 김말손의 구체적 활동 기록은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으며, 행적에 대한 상세한 서술은 대부분 후대 계보나 지역 자료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충청도병마절도사를 지낸 무신”이라는 점은 전승과 일부 문중 자료를 통해 전해지는 내용으로, 사료적 확정성은 제한적이다.

반면 지역사회에서의 김말손은 훨씬 더 강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서울 강서구 염창동 일대에 전해지는 ‘귀신바위 설화’는 그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설화에 따르면, 마을을 위협하는 거대한 바위와 그에 깃든 여귀가 각종 재앙을 불러오자, 김말손이 활을 쏘아 이를 물리쳤고, 이후 마을이 평온을 되찾았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괴이담이 아니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공동체를 지켜낸 수호자 서사로 기능한다. 즉, 김말손은 역사적 군인이기 이전에 ‘마을을 지키는 장군’이라는 상징적 존재로 재구성된 것이다.

이 설화와 함께 언급되는 영벽정(暎碧亭)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민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지는 이 정자는, 자연 경관과 인물 기억이 결합된 장소로 기능하며 지역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다만 영벽정의 건립 시기와 김말손과의 직접적 연관성 역시 문헌 사료보다는 구전과 향토 자료에 기반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보다는 ‘기념의 층위’에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김말손을 둘러싼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문중 형성이다. 그는 원주김씨 계열 인물로 전해지며, 강서 일대에 정착한 이후 해당 문중이 지역 기반을 형성했다는 서사가 함께 따라온다. 이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의 혈연적·문화적 기반이 구성되는 전형적인 구조로, 조선 후기 향촌 사회 형성과도 연결되는 흐름이다. 그러나 이 역시 계보 중심의 서술이 강하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 지역 정체성 서사가 결합된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

결국 김말손이라는 인물은 단일한 성격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는 분명 조선 중기 무관으로서 일정한 관직 경력을 지닌 인물로 전해지지만, 현재의 자료 수준에서는 그 실체를 상세히 복원하기 어렵다. 대신 그는 강서 지역에서 설화, 정자, 문중 기억을 통해 재구성된 ‘지역의 상징적 무신’으로 더 강하게 존재한다. 이는 역사 인물이 단순히 기록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필요와 기억 속에서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를 ‘실존 무관’으로만 보거나, 반대로 ‘전설 속 인물’로만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료가 확인되는 최소한의 역사적 층위와 지역 기억이 형성한 상징적 층위를 동시에 병치하는 것이다. 이 두 층위를 구분하면서 함께 읽을 때, 김말손은 단순한 전설의 주인공이 아니라, 강서 지역이 스스로의 역사와 정체성을 구성하는 방식 자체를 보여주는 인물로 드러난다.